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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묘명현 윤 구,고산 윤선도는 해남5현(海南五賢)父子가 사가독서고산의 증손 윤두서는 심사정.정 선과 더불어 삼재(三齋)윤두서의 아들 윤덕희도 윤두서(尹斗緖)과 함께 <쌍절>로 일컬어져해남윤씨(海南尹氏) 본관지 해남은 전라남도 남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고려시대에 해남(海南)으로 고쳐 영암군에 예속시켰다가,1409년(태종9) 진도현과 합하여 해진현(海珍縣)이라했으며,1448년(세종30)황원현,옥산현,죽산현과병합,당악(棠岳)으로했다가,1895년(고종32)현(縣)을 폐지하고 해남군이 되었다.<해남윤씨 중앙종친회>와 문헌에 의하면,해남윤씨가 지리지(地理誌) 성씨조에 최초로 나타나는 때는 서기1760년(영조36)에 만들어진 <여지도서(與地圖書)하(下),전라도 해남군 성씨조>라고 밝히고 있다.해남윤씨 시조 윤존부(尹存富)는 11세기인 고려 문종(재위:1046~1083년)때에 생존했던 인물이라고 한다.그러나 시조 윤존부(尹存富)부터 6세손 윤환(尹桓)까지는 생존년대,관직,배위(配位),세덕(世德)등의 기록은 없고,이름만 전해오고 있다고 한다.해남윤씨(海南尹氏)는 유실된 선대(先代)의 유적과 기록을 찾기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중이며, 선대의 유실된 세계(世系)를 찾기 위해 '역사적 과제'로 남겨놓고 있다.선조의 기록이 분명한 것은 7세손 윤녹화(尹綠和)부터라고 한다.해남윤씨는 문헌상에 나타난 기록(보물 483호)을 근거로 공민왕때 사온서직장(司 署直長:사온서는 대궐에서 사용하는 술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본 관청이며 직장은 종7품)을 지낸 8세손 영동정공부군(令同正公府君:영동정은 시재(試才)한 뒤 아직 서용(敍用)하기 전의 영직(影職)을 동정(同正)이라고 하는데,취재(取才)할 때 1등은 도염서영동정(都染署令同正)이란 직(職)의 벼슬을 주었고,2등은 도염서승동정(都染署丞同正)이란직을 줌)윤광전(尹光琠)을 중시조로 받들고,본관을 해남(海南)으로 하였다.중시조 윤광전(尹光琠)은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아들 윤단봉(尹丹鳳).윤단학(尹丹鶴) 형제를 데리고 해남(海南)으로 은둔하여,그 곳에 정착했다고 한다.그 후 자손들의 과관(科官)과 절의(節義)가 면면히 이어져,호남지방에 자리를 잡고 명문(名門)의 지위를 굳혀왔다.인구조사에서 해남윤씨(海南尹氏)는 1985년에는 11,518가구 48,780명,2000년에는 총 17,366가구에 55,627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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