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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리이씨 시조 이승휴(李承休,1224~1300,자 휴휴(休休),호 동안거사 動安居士)는 제왕운기(帝王韻記)의 저자로 유명하다.시조 이승휴는 서기1252년(고려 고종39)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했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두타산아래 구동(龜洞,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내미노리)에 낙향 노모를 봉양하며 학문을 닦았다. 그후 안집사(安集使:고려때 함경도지방의 행정을 관할하며 밑의 수령의 치적을 감독하던 벼슬로 안찰사가 겸임함) 이심돈(李深敦)의 권유로 상경하였다고하며,이장용(李藏用), 류경(柳璥)의 천거로 서장관(書壯官:사신을 수행하여 기록하는 임시벼슬)이 되어 원나라에 가서 화려한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다.귀국한 후 전중어사(殿中御史:왕명으로 특별한 사명을 띠고 지방에 파견되던 어사대나 감찰사의 임시 벼슬로 암행어사 등으로 5품에서 6품)가 되었으나, 1280년(충렬왕 6) 국왕의 실정과 척신들의 전횡을 들어 10개 항목으로 간언하다가 파직 당한다. 이승휴는 다시 삼척의 구동의 용안당(容安堂)에 은거, 제왕운기(帝王韻紀)와 내전록(內典錄)의 저술에 전념했다.제왕운기는 삼국유사와 함께 우리 민족을 단군의 후손으로 규정한 사서(史書)이다. 제왕운기는 상하 2권 1책인데 상권은 중국의 역사를 신화시대부터 원나라의 흥기까지 7언고시(七言古詩) 264구(句)로 읊었고,하권은 동국군왕개국연대와 고려의 역사(본조군왕세계연대)로 각각 나누어 264구 1460언의 7언고시, 152구 700언의 5언고시로 기술하여 우리나라의 역사와 중국역사를 읊은 웅대한 서사시다.이승휴는 71세 되던 해인 1294년 홀연히 용안당의 간판을 간장사(看藏寺)로 바꾸고 전재산을 불가에 희사했다.이승휴는 1298년(고려 충렬왕 24) 다시 등용되어 국가개혁의 중심세력으로 활약하며 사림시독학사(詞林侍讀學士),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판비서사를 거쳐 밀직부사감찰대부(密直副使監察大夫),사림승지(詞林承旨)에 이르렀으나 국정이 계속 표류되자 이승휴는 벼슬에서 물러난다. 그는 다시 구동으로 돌아온 지 2년 후인 1300년 10월 77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문집으로 <동안거사집>이 있다.이승휴의 아들 3형제가 있다. 첫째 아들 이임종(李林宗)은 사헌부의 벼슬에 있었으나,그만 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모셨고, 둘째 아들 이담욱(李曇昱)은 출가하였으며, 셋째아들 이연종(李衍宗)은 등과하여 규정(糾正:사헌부의 정6품검사)을 거쳐 밀직사 겸 감찰대부(監察大夫:감찰사의 으뜸 정3품)에 이르렀다. 문화관광부는 이승휴를 지난 2005년 10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이밖에 문중인물로 고려 충렬왕 때 이위종이 문과(文科:대과)에 급제 했다.통계청의 조사에서 2000년에는 총 666가구에 1,956명이었다.가리(加利)는 경북 성주군(星州郡)에 있던 지명으로,일명(一名) 기성(岐城)이며,본래는 성산가야국(星山伽倻國)이었다. 주요 성씨(姓氏)로는 이씨(李氏)가 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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