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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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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산이씨 시조 이덕부(李德富)는 계림(경주)사람으로 신라 신덕왕의 외손이라고 한다.그는 고려 의종,명종때 악거부정(樂居副正:종4품)을 역임하면서,정중부(鄭仲夫) 등에 의해 무신의 난이 일어나자, 경산촌 본아리(성주읍 경산동)으로 이거하였다.그 후 이덕부의 장손 이춘년(李椿年)의 후손들은 본관을 경산이씨로 하였고, 차손 이교년(李喬年)의 5세손 이고(李枯)는 청송부원군이 되면서 청송이씨로 하였다.시조묘는 경북 성주군 월항면 안포동에 있다.이감은 이성용(李成裕)의 아들로 고려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하고,벼슬이 부윤(府尹2품 지방장관)에 이르렀다.이능(李能)의 사위로 본아리에서 암포(월항면 안포동)로 이사하여 살았다.이흥문(李興門)은 도호부사(都護府使:도호부의 으뜸벼슬로 고려때는 4품 이상으로,조선 때는 종3품으로임명) 이번(李蕃)의 아들로 문장이 뛰어나고,조선 문종 때에는 대사헌(大司憲백관을 규찰하고 풍속을 바로잡던 사헌부의 종2품 검찰총장,감사원 감사위원)을 지냈다.경산이씨 집성촌은 경북 성주군 일원과 경북 경산군 윤서면 대곡리 등지이다.경산(京山)은 경북 성주군에 있던 지명으로, 6가야중 벽진가야(碧珍加耶)로 757년(신라 경덕왕16)에 신안현(新安縣)으로 개칭,성산군의 영현이 되었고,후에 벽진군으로 개편하였다.1295년(충렬왕21) 흥안도호부(興安都護府)로 되었다가, 성주목으로 승격했으나 1310년(충선왕 2)에 경산부로 환원되었다. 태종때 성주목으로 승격되었고,1896년 경상북도 성주군이 되었다.1979년 성주면을 읍으로 승격하였다.인구조사에 의하면 경산이씨는1985년에는 1,875가구에 7,909명이었고,2000년에는 2,551가구 7,978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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