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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셋째아들 이천충(李天忠)은 중시조.농서이씨는 성주이씨(星州李氏)와 같은 뿌리우리나라 농서이씨는 이장경(李長庚)을 시조로 받든다.는 널리 알려진 성주이씨(星州李氏)의 중흥조(中興祖)로 알려졌다.시조 이장경의 아들 5형제가 고려조에 모두 문과(文科:대과)에 급제 성주이씨(星州李氏)의 영화를 있게 한 인물이라고 한다.그런데 농서이씨( 西李氏)는 이장경(李長庚)을 시조로 받들면서 둘째 아들 이천년(李千年)의 후손으로 임진왜란때 구원군으로 온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의 셋째아들 이천충(李天忠)을 중시조로 받든다.중시조 이천충(李天忠)은 뒤에 이천근(李天根)으로 이름을 고쳤는데 이천충은 이여송(李如松)과 봉화금씨(奉化琴氏)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로 우리나라에서 살다가 명나라가 청에 멸망한 뒤 청나라의 쇄환령(刷還令)을 피하여 거제도의 아주(鵝洲)에 정착해 살았기에 농서이씨( 西李氏)의 중시조가 되었고 선대의 출신지인 중국의 농서( 西)를 관향으로 삼아 계대(系代)하고 있다.<족보도서관 및 농서이씨 자료참고>결국 농서이씨( 西李氏)는 성주이씨(星州李氏)와 같은 뿌리이며 후예이다.그래서 성주이씨대동보(星州李氏大同譜)인 '갑인보(甲寅譜)'의 편찬을 계기로, 두 종파가 동보(同譜)하기에 이르렀다. 이여송(李如松) 장군의 셋째아들 이천충(李天忠)은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자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름을 이천근(李天根)으로 고친 뒤에 거제도의 아주(鵝洲) 관송촌(貫松村)에 정착하여 살았다. 이후 자손들이 관송촌을 중심으로 한 일대에 세거하였으며, 한때는 90여가구에 달하는 자손들이 모여 살면서 세(勢)를 떨쳤다. 현재는 자손들이 도시나 타지(他地)로 이주해 갔다고 하며, 40여 가구가 거제도 장승포 옥수동(玉水洞)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농서( 西)는 중국 감숙성(甘肅省) 임조부(臨 府)와 공창부(鞏昌府)의 서쪽에 있었던, 진한시대의 군(郡)이름 이라고 한다.인구조사에서 1985년에는 83가구에 328명이었으며,2000년에는 315가구 1,045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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