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위메뉴 바로가기

성씨유래검색

  • 성씨

    서문(西門)

    문중

    서문(西門)

  • 유래

    안음서문씨는 서문기(西門記)를 시조로 받든다.시조 서문기는 중국 하남사람으로 원나라 순제때 중랑장(中郞將:고려때는 정5품)을 지냈다고 한다.그가 순제의 특사 자격으로 1351년(고려 충정왕 3) 공민왕(恭愍王)의 비(妃)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원나라 황족 위왕의 딸)를 배종(陪從지체 높은 사람을 모시고 따라감)하고 우리나라에 건너와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정착함으로써 우리나라 서문씨(西門氏)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공민왕은 그를 안음군(安陰君)에 봉했고 후손들은 본관을 안음으로 하였다.시조 서문기는 이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여러번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금원산 바위(일명 서문가바위)에 은둔하여 선비로서의 지조(志操)를 지키신 고려말의 충신이다.안음서문씨는 희성임에도 서문형(1610년 출생)이 서기1636년(인조14)에 별시(別試: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임시로 보던 과거시험으로 1456년(세조 2)에 처음 실시함) 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이며 시험은 무예와 병서로 3년마다 실시되었으며 초시.복시.전시의 3단계였음)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서문선(1623년 계해생)은 서기1660년(현종1) 식년(式年:3년마다 정기적으로 실시하던 과거)사마시(司馬試:진사와 생원을 뽑던 과거)에 3등으로 급제하였다.서문씨(西門氏)는 중국 양국(梁國:강소성 서해도 갈산)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이며 춘추시대(春秋時代)의 정(鄭)나라 대부(大夫)가 살고 있던 지명을 따서 성(姓)으로 삼은 것이 시초라고 한다.우리나라 서문씨는 원나라의 하남성(河南省) 출신으로 진사(進士)를 지낸 시조 서문기(西門記)의 후손들이 안음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진사(進士)는 진사시에 합격한사람에게 주는 칭호인데,고려에서는 958년(광종9) 과거제도를 시행하면서 1차시험에 합격한 자를 상공(上貢:중앙)진사.향공(鄕貢:지방)진사.빈공(賓貢:외국인)진사라 하였고,2차시험인 국자감시(國子監試)에 합격한 사람을 진사라 하였는데, 이들의 시험과목은 시(詩).부(賦).송(頌)및 시무책(時務策) 등이었다.조선초에는 문과(文科:대과)의 예비시험인 소과(小科)에 생원시(生員試)만 실시해 오다가,1438년(세종20)진사시도 설치하여,문예(文藝:詩.賦.頌.策)로써 시험하여 합격한 100명에게 진사의 칭호와 백패(白牌:합격증)를 주고 생원과 더불어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을 주었다. 이들은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문과에 응시,급제하고 벼슬길로 나아가는 것이 정도였다. 한편, 성균관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은 참봉.훈도.오위장등 종9품직을 제수받는 경우도 있었다.고려때는 진사가, 조선 전기에는 생원이 우위(優位)였으나,조선 후기에는 진사가 우위에 있었고,문과를 단념한 진사는 지방의 지도자로 군림하였다.서문씨의 본관은 안음외에도 청주(淸州).감음(感陰:안음의 옛 지명).동주(東州:철원지방) 등 3본(本)으로 문헌에 전해지나,모두가 동원(同源)으로 추정된다고 하며,안음을 제외한 관향에 대해서는 미상(未詳)이라고 한다.충남 금산과 전북 장수에 대다수가 살고 있는 서문씨는 시조의 아들 서문존(西門尊)이 조선조에서 부사(府使:정3품 외관직수령)를 지냈으며, 그의 아들 서문사(西門師)가 정랑(正郞:정5품)을 역임하여 가세(家勢)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목록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자료관리 담당부서 : 효문화마을관리원 > 뿌리공원과 > 뿌리공원담당 연락처 : 042-581-444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