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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양이씨(丹陽李氏)의 시조는 이배환(李盃換)으로 시조 이배환은 고려태조를 도와 삼한(三韓)을 통일 하는데 공을 세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940년 신흥사를 중건할 때 공신당을 세워 그곳의 동서벽에 초상이그려진 공신)에 책록되고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백관을 통솔하고 서정을 총리한 종1품 정승)에 이르렀다.문헌에 의하면, 시조 이배환(李盃煥)은 단산(丹山:단양의 옛 지명)사람으로 고려 태조의 후삼국 통일을 도와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서기 940년,후삼국 통일에 공이 큰 사람에게 상을 내리면서 제정됨 그해에 신흥사를 중수할 때 그곳에 공신당을 세우고 동.서벽에 삼한공신의 모습을 그렸는데 이 벽에 그려진 공신을 삼한벽상공신이라고 함)에 책록되고, 문하시중(門下侍中:종1품정승)에 올랐다. 그러나 시조 이후의 세계(世系)를 잃게되어 정확한 계대(系代)를 알 수 없자, 시조의 10세손 이방규(李方揆:일명 공비)를 중시조로 받들어 계대(繼代)해오고 있다.단양(丹陽)은 충청북도 단양군 지역의 옛 행정구역으로, 삼국시대에 삼국이 각축을 벌였던 지역이다. 서기 551년(신라 진흥왕 12)에 백제와 신라의 공동작전으로 신라의 영토가 되어 진흥왕이 순시할때 세운 적성비가 남아 있다. 940년(태조 23)에 단산현(丹山縣)으로 개칭되고, 1018년(현종 9)에 원주에 속하였다가 뒤에 충주(忠州)의 속현이 되었다. 1291년(충렬왕 17) 감무(監務:감무는 중앙에서 파견한 작은 현의 감독관)를 두면서 독립하였고,1895년(고종 32) 충주부의 관할하에 들어갔다가, 1914년에 군.면 폐합으로 영춘군을 병합하여 단양군이 되었다.1979년에 단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단양이씨는 시조 이배환의 14세손으로 판서(判書:정2품 장관)를 지낸 이거경(李居敬)의 아들 이 무(李茂)가 공민왕때 문과(文科:대과)에 올라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정령을 출납하고 궁중을 숙위하던 밀직사의 종2품)를 지내고 조선개국을 도와 정사1등공신(定社一等功臣)에 녹훈되어, 단산부원군(丹山府院君:단상은 단양의 옛이름)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단양(丹陽)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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