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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씨

    이(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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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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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이씨는 이품(李稟)을 시조로 받들고있다. 시조 이품은 고려 정종의 왕비인 용목왕후(容穆王侯)의 아버지로,공부시랑(工部侍郞:정4품차관)을 지내고,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에 봉해졌다.경주이씨의 한 파로,그 후에 부여에 대를 이어 살면서 후손들이 부여를 본관으로 하였다.부여(扶餘)는 충남 부여군의 옛지명으로,소부리(所夫里:사비 泗 )라 불렀고,백제의 마지막 수도로 660년(의자왕 20)에 나당(羅唐)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면서 신라에 예속되어,672년(문무왕12)에 부여도독부가 설치되었으며,751년(경덕왕10)에 이르러 부여현(扶餘縣)으로 개칭되었다.757년(경덕왕16)에 부여군으로 고치고,웅주(熊州:공주)영현에 두었다.1018년(현종9) 공주에 예속되었다가,1172년(명종2)에 감무(監務:작은현에 중앙에서 파견한 감독관)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이후 부여현으로 조선 말까지 유지되다가,1914년 군면 폐합으로 홍산현(鴻山縣).임천군(林川郡) 전역과 석성현(石城縣)·공주군 일부를 편입해서 16개 면으로 부여군이 형성되었다. 1960년 부여면(扶餘面)이 읍으로 승격되었다.인구조사에서 부여이씨는1985년에는 163가구 764명이었고,2000년에는 161가구에 506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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