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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한벽상공신으로 왕세자의 스승으로도 유명했던 문.무를 겸비한 명벌문헌과 안성이씨세보(安城李氏世譜) 기록에 따르면, 안성이씨(安城李氏) 시조 이중선(李仲宣)은 고려조에서 경군호장(京軍戶長:아전의 맨 윗자리,또는 그 사람)을 지내고,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서기940년 신흥사를 중수할 때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람으로 공신당의 동.서 벽에 초상이 그려진 공신)에 녹선되었으며, 벼슬이 삼중대광(三重大匡:고려때 정1품 품계)으로 태사(太師:3공(태사.태부.태보)의 으뜸 서열로 정1품)에 이르렀으며,4대 왕에 걸쳐 벼슬을 지내다 헌종말에 이르러 치사(致仕: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한 뒤 백하군(白夏君:안성의 고호)에 봉해졌다.백하(白夏)는 안성의 옛이름으로 후손들은 안성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기록에 의하면 시조 이중선(李仲宣)은 <농서이씨> 청륜계(靑倫系)의 맹선(孟宣),중선(仲宣),계선(季宣) 3형제 가운데, 둘째로 송나라에서 벼슬을 지내다, 송나라의 사신(使臣) 안도(安濤).진목(陳睦)을 따라 고려에 들어왔다고 한다.고려 문종의 부탁으로 세자 세손의 사부(師傳:세자를 교육하던 시강원의 정1품, 세손을 교육하던 강서원의 종1품)가 되고, 그후 경군호장(京軍戶長)이 되어 공을 세우고 문하시랑(門下侍郞:4품 차관)에 올랐다.그래서 후손들은 본관을 안성(安城)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으나 선대의 계보를 잃게 되어,그의 후손 이구(李玖:일명 흠).이희(李禧).이유(李裕).이극엄(李克儼) 이유인(李惟仁) 이공백(李共白) 등을 1세조로 받들고, 각각 다른 파(派)로 분파(分派)하였다. 인구조사에서 1985년에는 4,258가구 17,546명이었고,2000년에는 6,186가구 19,739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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