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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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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 최초의 반란 이징옥의 난양산이씨는 시조인 이만영(李萬英)은 고려 말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고, 조선 태조때 공신으로 이조판서(吏曹判書정2품장관)를 지내고 인천백(仁川伯)에 봉해졌다.그의 아들 이전생(李全生)이 고려 공민왕때 순찰사(巡察使:병란(兵亂)이 있을때 왕명으로 지방의 군무(軍務)를 순찰하던임시벼슬)로 전국을 순방하다 양산군 하북면 삼수리에 정착하여 살았고, 손자 이징석(李澄石)이 태종때 추충좌익공신(推忠佐翼功臣)에 책록되어 숭록대부(崇祿大夫:1품품계)에 올랐으며,예조판서(禮曹判書정2품장관),중추부사(中樞府事왕명을 출납하던 중추부의 2품)로 양산부원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본관을 양산으로 하였다.양산이씨는 조선시대에 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에 2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뽑던과거)에 4명 등 6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양산(梁山)은 경상남도 남동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940년(태조23)에 양주(梁州)로 개칭했으며, 성종때는 방어사를 두었다.1413년(태종13)에 양산군이 되어 조선시대동안 유지되었으며, 의춘(宜春).순정(順正) 등의 별호가 있었다. 1895년(고종32)동래부 양산군이 되었고,1973년에 동래군이 양산군에 통합되었다.1979년에 양산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1996년에 양산군이 시로 승격되었다인구조사에서 양산이씨는1985년에는 1,100가구에 4,517명,2000년에는 1,411가구에 4,509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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