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위메뉴 바로가기

성씨유래검색

  • 성씨

    이(李)

    문중

    이(李)

  • 유래

    서거정과 쌍벽을 이룬 당대의 문장가 금옥군자 이승소세종때의 '천문학자'이자 발명가 자연과학의 대가(大家)인 이순지를 배출한 명문양성이씨(陽城李氏)는 이수광(李秀匡)을 시조로 받들며 세계(世系)하고 있다.문헌에 따르면, 시조 이수광(李秀匡)은 고려 문종때 송나라에서 귀화해 왔다.시조 이수광이 고려에 온 유래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당시 고려가 송과 빈번한 문화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볼때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화평관계를 맺는데 공을 세워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補國:정1품의 품계)로 양성군(陽城君)에 봉해졌다고 한다.시조 이수광(李秀匡)은 고려에서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금오위는 고려 때 6위의 하나로 상장군.대장군이 통솔함)으로 상주국(上柱國:상주국은 국가 최고의 훈호)에 훈작 되었다.이어 삼중대광(三重大匡:정1품 품계)의 품계로 양성군(陽城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양성(陽城)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었다.양성이씨(陽城李氏)는 조선시대에 장원급제자 2명을 비롯하여, 문과(文科:대과)에 42명이 급제하였으며, 무과(武科:무관을 뽑기위하여 보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였으며 초시.복시.전시로 나뉘었음)에 28명, 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87명, 역과(譯科:중국어.몽고어.여진어.일본에 능통한 사람을 역관으로 뽑기위해 보던 시험)에 9명, 의과에 3명 음양과(陰陽科:천문.지리.명과학(命課學)에 밝은 사람을 등용하기 위하여 보던 과거)에 16명 등 185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하여 선비가문으로서의 가통을 이었다. 인구조사에서 양성이씨는 1985년에는 총 9,245가구에 38,302명이었으며, 2000년에는 13,721가구에 44,402명이었다.양성(陽城)은 경기도 안성시(安城市) 일원에 위치하는 지명으로,서기 940년(고려 태조 23)에 양성으로 개칭했고, 1018년(현종 9)에는 수주(水州:수원)에 병합되었다가, 1175년(명종 5)에 감무(監務:중앙에서 파견한 감독관)를 두면서 독립하였다.1413년(태종 13)에 현감(縣監:종6품)을 두고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이속되었으며,1895년(고종 32) 공주부 안성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경기도 안성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양성군과 죽산군이 폐지되어 안성에 병합되어 안성군이 되었다. 1937년에는 안성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63년에 용인군 고삼면이 안성군에 편입되고 1992년에 이죽면이 죽산면으로 개칭되었고1998년 안성시로 승격되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목록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자료관리 담당부서 : 효문화마을관리원 > 뿌리공원과 > 뿌리공원담당 연락처 : 042-581-444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