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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의 유언을 지켜온 절의(節義)의 가문벼슬을 않고 현금(玄琴)을 즐겨 '天默默地默默我亦默默'이란 곡을 지어영천이씨 시조 이능간(李凌幹, 호(號)는 송헌 松軒)은 고려 충숙왕 7년 반전별감(盤纏別監:세자가 행차할 때 호위 무사)으로 원나라에서 상왕(上王:충선왕)을 토번(吐蕃)에 유배시킬 때 충선왕을 호종(扈從:왕가를 따르며 시종함)하였다고 하며, 충선왕이 죽자 재궁(梓宮:왕.왕비 등의 시체를 넣던 관)을 모시고 고려로 돌아왔다.충숙왕13년에는 원나라가 고려에 성(省)을 두려 하자,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왕명을 출납하던 밀직사의 종2품)로서 원의 황제에게 주청하여 중지케 함으로써,1등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사림(士林)에게서는 면좌당(免左堂)이라는 액호(額號)를 받았다.충숙왕15년에는 감찰대부(監察大夫:어사대를 고쳐 부르던 관청의 정3품)로 있으면서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충혜왕 1년에 다시 첨의평리(僉議評理:참지정사가 뀌뀐 종2품재신,1327년에는 문하평리로 바뀜)로서 원나라에 다녀왔다1332년(충혜왕 복위 2년)에 첨의정승(簽議政丞:백관을 통솔하던 종1품 정승)에 올랐으며, 문하시중(門下侍中:백관을 통솔하고 서정을 총리하는 종1품 정승)때 '조적의 난'을 평정하여, 공신이 되고 영천부원군(寧川府院君)에 봉해짐으로써, 관향을 영천(寧川)으로 삼았다.문헌에 의하면 영천이씨는 1930년경에 전북 남원군 이백면 초촌리와 주천면 용담리.전남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어 살았다고 한다.영천(寧川)은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일원에 위치하며, 소정방이 백제를 패망시키고 대방주(帶方州)라 하여 일시 지배하였다. 나중에 신라의 문무왕이 합병하고 신문왕때 소경(小京)을 두었으며,고려때에는 일시 대방이라 하였으나 남원부(南原府)로 지속되었다. 조선에 남원도호부(南原都護府)로서 1부 1군 9개현을 관할하였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남원군(南原郡)이 되었다.영천이씨는 선조의 유언에 따라 영천이씨 후손들은 과거에 응시하지 않아 조선조에서는 출사한 인물이 많지가 않다.영천이씨는 조선시대에 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시험)에 3명이 급제햇으며, 인구조사에서 영천이씨는 1985년에는 23,290가구에 95,473명이었으며,2000년에는 36,781가구 116,970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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