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위메뉴 바로가기

세계 孝 중심지 향한 첫 발, 인성교육과 뿌리의식 - 孝 !World

성씨유래검색

  • 성씨

    이(李)

    문중

    이(李)

  • 유래

    울산이씨는 이철(李哲)을 시조로 받든다.시조 이철은 고려 고종때 삼중대광(三重大匡:정1품품계)으로 문하시중(門下侍中:서정을 총리한 종1품 정승)에 이르렀고 이어 판전리사사(判典理司事:전리사는 고려때 문관의 선임.공훈.봉작 등의 일을 총괄한 중앙인사행정기관이며 판전리사사는 정1품)를 지냈으며,김취려(金就礪)를 도와 영변에서 글란군의 침입을 격퇴한 공으로 학성군(鶴城君)에 봉해졌다.이철은 경주이씨 1세조 이거명의 15세손으로 경주이씨에서 분적하여,시조 이철이 학성군(鶴城君:학성은 현재의 울산)에 봉해짐으로서,후손들이 울산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울산이씨는 교위공파(校尉公派),승훈공파(承訓公派),첨정공파(僉正公派),참봉공파(參奉公派),군수공파(郡守公派)등이 있다.울산은 경상남도 동해안에 위치한 고장으로, 고려 태조때 이 고장 사람인 박윤웅이 태조를 도운 공으로 우풍현(虞風縣)과 동진현(東津縣)을 병합해 흥려부(興麗府)로 승격되었다가,1413년(태종13)에 진을 혁파하고 울산군으로 고쳤다. 1418년에는 염포(鹽浦)를 개항해 일본에 대한 문호를 열었으나,1510년(중종 5) 삼포왜란으로 왜관이 폐지되었다. 임진왜란중인 1598년(선조 31)에 울산도호부(蔚山都護府)로 승격되어 병마절도사가 부사를 겸하였고 1616년(광해군 8)에 다시 별도로 부사를 파견하였다. 1896년에는 경상남도 울산군이 되었다. 고려 성종 때 울산의 별칭을 학성(鶴城)이라고 하였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의해 울산읍을 시로 승격,1995년 울산시와 울산군을 통합하고1997년 울산광역시로 출범하였다.인구조사에서 울산이씨는1985년에는 1,128가구 4,433명이었고,2000년에는 1,967가구 6,328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목록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자료관리 담당부서 : 효문화마을관리원 > 뿌리공원과 > 뿌리공원담당 연락처 : 042-581-444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