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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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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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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父子 정승,소론 4대신,사육신 류성원,실학자 류형원족보의 효시 영락보.가정보창씨개명 집단으로 거부한 문화류씨류씨와 차씨의 동조이성은 위서를 오인한 소치<류차동원(柳車同源)은 조선중기에 조작된것>그동안 류씨(柳氏)와 차씨(車氏)간에 동조이성(同祖異姓)운운 하였는데,이는 위서(僞書)를 오인(誤認)한 소치로서 조선중기에 조작되어 세상에 나온것에 불과하다고 문화류씨대종회는 밝히고있다.<문화류씨대종회>는 문화류씨 유래와 역사에 대해서, "문화류씨와 연안차씨가 조상이 하나라는 류차동원(柳車同源)에 입각한 묘사는 사실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며, 류차동원은 그 출처를 추적해보면 조선 중기에 비로소 조작되어 세상에 나온것에 불과하다고 밝히고있다.문화류씨대종회는 "문화류씨는 그 자출(自出:근원)이 신라말~고려초에 황해도 구월산아래에서 류씨가문을 처음 일으킨 시조 대승공 류차달이며,"대승공은 아들이 류효금(柳孝金) 한분"이라고 천명하고 있다.또한 <류차동원설:류차동원설은 류주환교수 명명>을 다년간 연구해온 충남대학교 공과대학 류주환교수는 "차원부설원기" 자체가 위작(僞作)이고, 그 내용도 전부 믿을 수 없음은 이미 공인된 사실이며, 이는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이나 여러 역사학자들의 공식 반응들이 근거"라면서 "그런 거짓 책에서 비로소 시작된 얘기를 진실이라고 믿을 수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류주환교수는..<중략>..."저는 이런 사전류, 특히 인터넷 사전류의 정정이 급선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우선 대상으로 선정하고 그곳의 차원부 및 관련 항목들을 삭제 혹은 최소한 수정하는 노력을 시작했습니다.이사전은 "한국학중앙연구원"(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라는 기관에서 발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으로 설원기가 위작임을 증명하는 글을 작성해서 2008년 7월 1일자로 정정 요청을 송부했습니다. 거기서 제가 요구한 것은 차원부 및 설원기 관련 항목의 내용에서 사실이 아닌 것들은 삭제해달라는 것과, 나아가서 그렇게 되면 해당 항목들이 표제어로 올라 있을 가치가 없기 때문에 아예 항목 자체를 삭제하는 것을 검토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그리고 2008년 8월 5일자로 그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에 관한 사항임을 생각하면 무척 신속한 답변을 받은 것이라 생각됩니다.답변 내용은 저의 요구 사항의 전적인 수용입니다. (실질적인 변경은 일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2011년에 반영될 예정이라 합니다.) 저의 심정으로는 하루 빨리 그 거짓 정보들이 삭제되기를 바라지만 설원기가 권위 있는 책으로 인식되어 내려온 것이 무려 수백 년입니다. 지금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설원기가 위작임을 인정했다는 사실 자체만도 실제 아주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충남대학교 교수 류주환><문화류씨통사>에 의하면 문화류씨(文化柳氏)는 국사(國史)나 공가문헌(公家文獻)에 처음 등재된것은 <고려사>와 <동국여지승람>이라고 한다.고려사 열전(列傳)에 등재된 문간공(文簡公) 류공권(柳公權:정당문학(政堂文學(종2품)역임)의 주(註)에 "공의 6세조 류차달(柳車達)은 고려 태조의 개국을 도와 삼한공신(三韓功臣)으로 관직은 대승(大丞)이었다."고 하였다.대승(大丞)은 고려 초기의 관계로 고려의 제도가 정비되기 전에 문.무관에게 수여되었으며,고려 16관계 중 5위에 해당하였고 서기 995년(성종14) 문.무의 관계를 나눌 때 흥록대부(興祿大夫)로 개칭하였다. 그러나 이 호칭은 향직 3품으로 존속,비관인층(非官人層)과 지방 호족들에게 수여되었다.동국여지승람의 황해도 문화현(文化縣)의 인물편에 "류차달(柳車達)은 고려 태조가 남방을 정벌할때 수레를 많이 내어 군량을 공급함으로써 그 공으로 고려 태조가 대승(大丞)에 제수함과 아울러 삼한공신으로 사호(賜號)하였다"고 하였으며,배위 김씨(金氏)는 경주김씨(신라김씨) 도시조 대보공 김알지(金閼智)의 후손 김균의 딸로 아들인 좌윤(左尹) 효금(孝金)을 두었다.류차달의 아들인 좌윤(左尹) 효금(孝金)이 구월산을 유람하다가 호랑이를 만나 입속에 걸려있던 비녀를 빼줘 그 음덕으로 자손 대대로 경상(卿相)이 되리라고 산신이 현몽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고 좌윤공의 5세손 문간공(文簡公)류공권(柳公權)이하 수대(數代)의 사행(事行)이 기록되어 있다.류씨(柳氏)는 고려 개국이후 천여년 동안 명신석학(名臣碩學)이 배출된 명벌(名閥:문벌이 좋은 집안)로써 예로부터 삼한갑족(三韓甲族:대대로 문벌이 높은 가문)으로 일컬어 왔다.문화류씨는 1423년(세종5),우리나라 최초의 족보로 인정 받고있는 영락보(永樂譜:1423년 세종 5)를 만들었으며,또한 문화류씨 족보로서의 권위를 인정 받고 있는 가정보(嘉靖譜:1562년 명종 17년,10권 2204쪽)는 사보(私譜)라기 보다는 공보(公譜)의 성격이 짙어 이 족보를 보면, 공경사대부와 그 후예들 그리고 왕후 비빈(妃嬪:왕비와 정1품의 내명부)의 세계가 모두 기록되어 있어, 본격적인 체계를 갖춘 "족보의 효시"로 통한다.문헌에 의하면 류씨는 후손의 번성으로 인해 풍산류씨,서산류씨,전주류씨,진주류씨,선산류씨등 6본관으로 분적되어 계대(系代)하고 있으나, 모두 류차달의 혈손이기에 류차달의 벼슬이었던 대승(大丞)을 따서 <대승장학회>를 구성하고 친목을 돈독히 하고 있다.한편 류릉(柳陵)의 사진이 남북분단후 처음으로 최근 공개되었다.남북분단으로 가볼수 없었던 구월산 아사봉에 자리잡고있는 대승공 실제 묘역인 류릉을 2008년9월26일 문화류씨대종회 류기환 명예회장이 아들과 함께 참배하고 촬영한 사진을 대종회홈페이지에 올려놨다.류차달(柳車達)은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정벌할 때 군량보급이 어려움을 알고 사재를 털어 차 1천량을 제작 군량과 함께 보급해준 공으로 '익찬 벽상공신(翊贊壁上功臣:벽상공신은 고려 태조가 서기 940년 신흥사를 중건할때 고려개국에 공을 세운 사람들의 초상이 공신당 동.서의 벽에 그려진 공신)'에 서훈되고 벼슬이 대승(大丞태봉과 고려 초기의 16관등 가운데 5번째 등급,고려때 향직의 3품상(上)의 관계)에 올랐다.문화(文化)는 황해도 신천의 옛지명으로,1895년(고종32)해주부 문화군,1909년 문화군은 신천군으로 폐합되면서 문화면으로 축소되었다.문화류씨는 유주가 문화(文化)로 지명이 바뀌면서,본관을 문화(文化)로 하였다.인구조사에 의하면 문화류씨는1985년에는 60,911가구 255,632명, 2000년에는 87,186가구에 284,083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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