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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씨

    이(李)

    문중

    이(李)

  • 유래

    재령이씨는 고려의 중신 이우칭을 시조로 받든다.시조 이우칭은 경주이씨 중시조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의 7세손으로 고려 초.중기에 보조공신(補祚功臣)에 책록되고 문하시중(門下侍中:서정을 총리하던 종1품 정승)에 이르러 재령군(載寧君)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재령을 본관으로 삼았다. 재령이씨는 원래 경주이씨였으나 이 때에 분관하였다.주요세거지인 경북 영덕군 영해읍 창수면 인양2동에는 재령이씨 영해파 문중이 4백80여년간 가풍을 이어온 곳이다. 이곳에 뿌리를 내린 인물은 고려때 절신 이오(李午)의 증손자로 성종때 부제학(副提學홍문관의 정3품)을 지낸 이맹현(李孟賢)의 아들 이애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이마을의 산천경관을 보고 반드시 큰인물이 나올 형세라고 감탄하고,이를 시기하여 영해부(寧海府) 시리목,쟁이골 등의 산맥을 끊어버렸다는 전설이 있다.그러나 이애의 손자 이증(李贈) 이조참판(종2품 차관) 이함(李涵)이 인부를 동원,산맥을 다시 이었고, 그후 이씨문중은 당대 천석의 부를 쌓기 시작했고, 여러 석학들이 배출되었다고 한다.재령(載寧)은 황해도 중앙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995년(성종 14)에 방어사(防禦使)를 두었다가,1018년(현종9)에 방어사를 폐하고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에 예속시켰으며,1217년(고종4)거란병의 침공을 막은공으로 재령(載寧)으로 고치고 현으로 승격하였다. 1397년(태조6)풍주(豊州)관하의 삼지현(三支縣)을 합하였고,1415년(태종15) 1천호 이상의 고을을 군(郡)으로 할때 군수관(郡守官)으로 승격하였다.인구조사에 의하면 재령이씨는1985년에는 11,060가구 45,417명,2000년에는 16,112가구 50,940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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