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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이씨는 이군재(李君梓,호는 벽호 碧湖)를 시조로 받든다.시조 이군재는 경주이씨 시조 이거명(李居明)의 17세손 이수(李蓚)의 넷째 아들로 조선 태조때 이조판서(吏曹判書:정2품장관)를 지냈다.이군재는 태조에게 직간(直諫:임금에게 잘못된 일을 직접말함)을 하다가 성천(成川)으로 유배되어,대제학(大提學:홍문관.예문관의 정2품문형)을 사임하고,그 곳에서 살며 고향인 진주로 내려가 있는 형 이영재(李英梓)를 생각하며 본관을 진주로 삼았다고 한다.진주이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1명,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에 12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과거)에 7명 등 20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진주(晉州)은 경상남도에 위치한 지명으로 1392년(태조1)에 진양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가 되었다가,1402년(태종2)에 진주목으로 환원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1896년 경상남도 진주군이 되었고,1939년 진주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나머지 지역이 진양군으로 개칭되었으며,1995년 진양군이 진주시에 통합되었다인구조사에서 진주이씨는1985년에는 2,926가구 13,591명이었고,2000년에는 3,798가구에 12,636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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