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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3월5일 목은 이색 과거시험 답안지 발견가정 이곡. 목은 이색 조선조 문과급제자 200명목은 문하(門下)에서 권근.변계량 등 배출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한 사육신 이 개,대문장가 이산해,월남 이상재한산이씨(韓山李氏)는 고려때 권지호장(權知戶長:호장은 고을 아전의 맨윗계급이며 보통 호장공계라 하며,제반 지방 사무를 섭행하였다.호장은 상호장.섭호장,나이70세가 넘으면 주던 안일호장등이 있고,권지는 과거합격자로서 임용 대기중인 견습 관원)을 지낸 이윤경(李允卿)을 시조로 받들고 있다.또한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아버지 이곡(李穀)을 중흥시조로 받든다.시조 이윤경의 묘는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 건지산하에 있다.중시조(中始祖) 이곡(李穀.호는 가정.자는 중부)은 이제현(李劑賢)의 문인으로, 당대의 대문장가이며 포은 정몽주와 더불어 경학(經學:사서(四書).오경(五經)등 유학(儒學)의 경서(經書)에 대한 학문)의 대가(大家)였다.그는 충숙왕 7년에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였으며, 원나라 제과(制科:황제가 친히보이던 과거)에도 급제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중서문하성의 종2품)을 거쳐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정2품부총리)에 이르렀다.아버지는 이자성(李自成)이며 아들은 이색(李穡)이다. 백이정,정몽주,우탁(禹倬)과 함께 경학(經學)의 대가로 꼽힌다. 1317년 거자과(擧子科:예비고사인 국자감시)에 합격, 예문관 검열(檢閱:예문춘추관의 정9품)이 되었다. 1332년 원나라에서 정동성 향시(鄕試:문과(文科).무과(武科).생원시(生員試).진사시(進士試) 등 과거의 초시(初試)로서 각 도에서 보이던 1차 시험)에 수석합격, 전시(殿試,복시에 선발된 사람에게 임금이 친히보이던 최종시험)에는 차석으로 급제했고,한림국사원검열관(翰林國史院檢閱官)이 되어 원나라 문사들과 사귀었다.1334년 귀국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종2품품계)의 품계로 시전의부령(試典儀副令:제사를 주관하고, 임금의 묘호(廟號)와 시호(諡號)의 제정을 맡았던 관청의 4품차관급).보문각직제학(直寶文閣:경연(經筵)과 장서(藏書)를 맡아보던 관청의 정4품)을 제수받았다. 이듬해 다시 원나라에 가서 정동행중서성좌우사원외랑(征東行中書省左右司員外郞:정동행성은 충렬왕 6년(1280)에 원나라가 일본 원정을 위하여 개경에 설치했던 기구로, 2차례의 원정 실패로 철폐했다가, 충렬왕 11년(1285)에 다시 세운 이후 고려 말까지 존속하였는데 장에 해당하는 좌승상에는 고려왕이 겸하였고 종6품 원외랑 등의 하급도 고려인으로 채워짐)등의 벼슬을 거쳤고,고려에서의 처녀 징발을 중지하도록 건의했다. 1344년 귀국, 이듬해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정2품부총리)로 한산군(韓山君)에 봉해졌다.이제현(李齊賢)등과 함께 편년강목(編年綱目충숙왕때 민지(閔漬)가 고려 국가를 세운 왕건의 조상 때로부터 13세기 중엽 고종 때까지의 역사를 쓴 총42권의책)을 증수했고,충렬왕.충선왕.충숙왕 3조의 실록편찬에 참여했으며, 문장이 뛰어나 원나라에서도 존경받았다. 중소지주 출신의 신흥사대부로서 유학의 이념을 가지고 현실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으나, 이상을 이루기는 어려웠다.가전체 작품 죽부인전(竹夫人傳)과 100여 편의 시(詩)가 동문선(東文選조선전기 서거정이 엮은 신라 때부터 그 때까지의 한국의 시문을 모은 것)에 전하며, 저서로 <가정집> 4책 20권이 전한다. 54세에 세상을 떠났으며, 한산의 문헌서원(文獻書院), 영해의 단산서원(丹山書院)에 배향되었고 시호는 문효(文孝)이다.그의 아들 이색(李穡:호는 목은) 역시 이제현(李劑賢)의 문인으로 고려 말의 석학이자 대유(大儒)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이색(李穡)은 원나라 제과(制科:황제가 친히 보이던 과거)에도 급제하여 공민왕 때 문하시중(門下侍中:백관을 통솔하고 서정을 총리하던 종1품 정승)에 이르렀고,그의 문하에서 권근(權近),변계량(卞季良)등의 대학자와 명신(名臣)이 배출되어 성리학(性理學)의 주류를 이루었다.목은 이색(李穡)은 서기1362년 <홍건적의 난>때 왕을 호종(扈從:왕가를 모시고 따르던 사람)하고 나라에 공을 세워 한산부원군(韓山府院君)에 봉해졌으며, 후손들은 본관을 한산(韓山)으로 삼아 세계(世系)하여왔다.부벽루(浮碧樓)- 이색(李穡)작과영명사(昨過永明寺)라가 잠등부벽루(暫登浮碧樓)라 성공월일편(城空月一片)이요 석로운천추(石老雲千秋)라 인마거불반(麟馬去不返)이요 천손하처유(天孫何處遊)오 장소의풍등(長嘯倚風 )하니 산청강자류(山靑江自流)라어제 영명사를 지나다가 잠시 부벽루에 올랐네.성은 텅 빈 채로 달 한 조각 떠 있고,기린마는 떠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데오래된 조천석 위에 천 년의 구름 흐르네,천손은 지금 어느 곳에 노니는가 돌다리에 기대어 휘파람 부노라니,산은 오늘도 푸르고 강은 절로 흐르네.이 작품은 고려 말의 문신이었던 목은 이색이 고구려의 유적지인 평양성을 지나다가 지은 오언율시(五言律詩)이다. 그 옛날 찬연했던 고구려의 모습은 이제 찾을 수 없고,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하는 퇴색한 자취만이 남아 있는 데서 허무함을 노래한 시(詩)이다.이밖에도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인 이개(李塏)와 이산해(李山海)도 한산이씨(韓山李氏)가 배출한 걸출한 대문장가이다. 한편 한산이씨(韓山李氏)는 같은 뿌리이면서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다.한산이씨(韓山李氏)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호장공계(戶長公系)의 시조는 고려 숙종 때 호족으로서 권지호장직(權知戶長職:왕조때 아전의 맨 윗자리)에 오른 이윤경(李允卿)이다.광정대부(匡靖大夫:고려 문관 종2품품계)로 상호군(上護軍:상장군 정3품)에 올라 한주군(韓州君:한주는 한산의 고호)에 봉해진 이무(李茂)의 3대조 이윤우를 시조로 받드는 권지공계(權知公系)의 시조 이윤우(李允佑)는 고려시대 중엽에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권지합문지후(權知閤門祗候:고려때 조회(朝會).의례(儀禮) 등 국가 의식을 맡아보던 합문 소속의 관직.합문이 처음 설치된 목종 때 두었으며 문종때 정원 4인, 정7품)를 지냈다고도 하며, 왕의 신임을 얻어 동생 이윤경과 함께 각각 한산이씨(韓山李氏)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그러나 호장공계의 족보에는 두사람이 형제였다는 내용이 없다고 한다.권지공계는 여러대를 독자(獨子)로 세계(世系)을 이어왔기 때문에,현달(顯達:벼슬이나 덕망이 높아서 이름을 세상에 들날림,입신출세)한 후손이 상대적으로 없다.고려말 3은(三隱)의 한 사람인 목은 이색(李穡)을 비롯하여, 사육신의 한 사람인 이개(李塏), 대문장가 이산해(李山海)등을 배출한 한산이씨는조선시대 상신(相臣:정1품 정승) 4명,대제학(大提學:홍문관.예문관의 정2품 문형) 2명,청백리(淸白吏) 5명,공신 12명과 문과급제자 195명을 배출하였다.2009년 3월5일 '목은 이색'의 과거시험 기출문제가 발견되었다.이날 발견된 호사문고 필사본은 목은 이색(1328~1396)및 포은 정몽주 등의 답안지인 대책문(對策問)으로이 책문은 왕이 국가현안을 타개 할 방법을 논(論)하라는 시험이다.이 색은 이미 서기1351년에 무과(武科)의 설치를 제언했으며,정몽주도 문.무를 갖춘 무관 양성을 이때의 과거시험에서 제안해 장원급제를 하게 된다.<편집자 주> 이종선(李種善)은 여흥부사(府使:정3품 수령) 등을 지내고,1417년 풍해도와 충청도의 도관찰사(觀察使:종2품 감사)를 역임한 후 문성유후(門城留後)에 이어 중추원사(中樞院使:왕명을 출납하던 중추원의 종2품)를 지냈다.이맹균은 서기1385년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성균직학(成均直學:종9품)을 거쳐 조선개국 후인 1418년 충청도관찰사(觀察使:종2품 감사)가 되고 한성부윤(府尹:종2품)을 지냈다.그는 1425년 진위사(陳尉使:중국 황실에 국상이 났을때 조문하는 사신)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대사헌(大司憲:백관을 규찰하던 사헌부의 종2품 검찰총장)을 지내고 이조(吏曹)와 병조(兵曹)의 판서(判書:정2품 장관) 등을 거쳤으며 우찬성(右贊成:의정부 종1품재신)에 이어 좌찬성(左贊成:종1품)에 이르렀다.고려말의 석학(碩學)이며 거유(巨儒)로서 조선조 성리학 발전에 공헌한 이색(李穡)은 원나라 제과에 급제하고 공민왕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종1품 정승)에 이르렀다. 그는 조선이 개국하자, 여주.장흥 등지로 유배되었으며 끝까지 절개를 지키다가,여강(驪江)으로 가던 중 간신들에 의해 주중폭사(舟中暴死)하였다.사육신의 한사람인 이개(李塏) 또한 한산이씨 가문을 불사이군(不事二君:한사람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함)의 충절로 빛낸 인물이다.이 개는 1436년 문과에 급제하고 훈민정음의 창제에 참여하였으며,1447년 문과 중시(重試:이미 과거에 급제한 사람에게 거듭 보이던 시험으로 이에 합격하면 품계를 특진시켜 당상관에까지 오를 수 있음)에 급제한 뒤, 1456년 직제학(直提學:홍문관의 정3품,집현전의 종3품)에 이르렀다.이개(李塏)는 성삼문(成三門).박팽년(朴彭年) 등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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