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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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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무로 나라 지켜온 장군 가문교동(喬桐)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해중(海中)의 섬이다. 757년(경덕왕16)교동현으로 개명하여 해구군(海口郡)에 속하게 하였으며 고려때도 교동현이었다.1629년(인조7) 부(府)로 승격되었으며,수사(水使:수군절도사)가 부윤(府尹:종2품지방장관)을 겸임하였다. 1914년 군을 폐하고 강화(江華)로 합했다.교동인씨(喬桐印氏)는 좌씨전(左氏傳:춘추시대에 노나라 좌구명이 지은 춘추전.전 30권)과 계고집성(稽古集成)등의 문헌에 의하면,중국 정(鄭)나라 목(穆)의 증손 7명중에 자장(子張)의 아들 단(段)이란 사람이 조부의 이름인 자인(子印)의 인(印)자(字)를 따서 성(姓)을 인씨(印氏)로 삼았다고 한다.단(段)의 후손인 인서(印瑞)가 진(晋)나라 풍익(馮翊)의 대부(大夫:중국에서 세등급으로 나눈 품계의 하나로 주나라때는 경(卿)의 아래 사(士)의 위)로서 서기 300년(신라 기림왕 3년)에 사신으로 왔다가 우리나라에 정착하여 신라에서 아찬(阿飡:신라의 17관등중 6등위로 차관급으로 육두품이 오를 수 있는 관등)의 벼슬을 지냈으며, 인서(印瑞)가 교동인씨(喬桐印氏)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그후 33세손 인빈이 고려 인종때 한림학사(翰林學士:한림학사는 문신가운데 뽑힌 뛰어난 학자로서 한림원.수문전 등의 종2품.정4품)로 교수부원군(喬樹府院君:교수는 교동의 옛이름)에 봉해졌기에, 인씨(印氏)후손들은 본관을 교동(喬桐)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문헌에 나타난 우리나라 인씨(印氏)는총 23본(本)이며 2000년 조사에서는 14본이었다.고려 충렬왕때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충렬왕 비)를 수행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검교 정승(檢校政丞:검교는 명예직,정승은 종1품 정승)을 지낸 원나라 사람 인후(印候)를 시조로 하는 연안인씨(延安印氏)와 교동인씨(喬桐印氏)를 제외한 나머지는 세거하는 지명이라고 한다.교동인씨(喬桐印氏)는 조선시대에 인승광(印承光)이 고종때 문과(文科:문관을 뽑기 위한 과거로 초시.복시.전시의 3단계로 나뉘어 3년마다 실시한 대과) 별시(別試: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병년(丙年)마다 보던 과거)에 급제하고, 글로서 이름이 높았으며 무과(武科:무관을 뽑기위한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였으며 초시.복시.전시의 3단계로 나뉘었음)에 11명, 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5명 등 17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하였다.인구조사에 의하면 교동인씨는1985년에는 4,140가구 17,558명이었으며,2000년에는 5,403가구 17,448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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