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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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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숙자,김종직,김효원(동인.서인 만든 장본인) 등 대학자 배출선산김씨의 시조는 김선궁(金宣弓:초명은 김선金宣)이다.시조 김선궁은 신라김씨 도시조 김알지(金閼智)의 30세손이자, 경순왕의 삼종질인 체의공(體誼公)의 아들로 문성왕의 8세손이다.서기1690년에 출간된 선산김씨족보 경오보(庚午譜)에도 "김선궁은 신라 태보공(太輔公) 김알지(金閼智)의 30세 손이자 신라 46대 문성왕(文聖王)의 8세손으로 신라김씨(金氏) 왕세대(王世代)의 마지막 왕손인 체의공(體誼公)의 아들이다"고 나와있다.김선궁은 어렸을때 아버지에게 상해를 입힌 사람의 목을 베고 조정에 처벌을 자청 투옥되었으나,조정에서는 효자라 하여 석방시켜 오히려 표창을 하였다.그는 약관15세의 나이에 고려 태조의 원정군으로 종군,태조로부터 하사된 어궁(御弓)과 함께 선궁(宣弓)이라는 이름을 사명(賜名)받고 후백제군과의 일리천(一利川)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고려 삼한통일에 기여한 개국공신의 반열에 올랐다.김선궁은 태조의 부름을 받고 개경에서 출사 길에 오른후,왕건을 도와 후삼국의 통일에 크게 기여했으며,정난보국공신(精難輔國功臣)에 책록되어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고려 종1품 정승으로 백관을 통솔하고 서정을 총리함)에 이르고 나중에 선주백(善州伯)으로 봉해졌다.이존록(彛尊錄)을 보면 고려의 개국공신이자 문하시중이었던 김선궁이 세상을 떠난후 큰 아들 김봉술(金奉術)이 문하시중을 습작하고 이어 그 후손들이 개경(開京)에 계속 머물러 벼슬을 하게 되자 후예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고 본관을 일선(一善)이라 하였다.이존록(彛尊錄)은 조선 중기의 학자 김종직(金宗直:1431~1492)이 그의 가계와 부친 김숙자(金叔滋 :1389~1456)의 전기와 행적,부친의 제자와 종유자(從遊者),가문의 제사법 등을 기록한 책이다.1458년(세조4)에 저술한 것을 생질 강백진(康伯珍)이 교정해 1497년(연산군 3)에 간행했다. 이후 여러 차례 중간되었고,서문은 조위(曺偉)가 썼다. 첫편 보도(譜圖)는 가계(家系)이다. 먼저 부친상을 마친 후 흩어진 지파의 족보를 모아 선조 18대의 계보를 복원한 경위를 적고,복원한 선조로부터 자신에 이르는 18대의 계보도와 직계선조 14대의 사적을 기록했다. 기년(紀年)은 김숙자의 행적을 연도별로 기록한 것이다.사우(師友)는 김숙자의 제자, 동년급제자, 생원시 동년급제자,친우,향당(鄕黨),친척의 명단 등을 나누어 수록했다. 사업(事業)은 김숙자의 인물됨.학문활동.경력.선행 등 일생 동안의 주요행적을 적었다. 여기에는 세종 때의 공법(貢法)에 대한 건의,답험(踏驗) 문제에 관한 기록도 있다. 제의(祭儀)는 가문의 제사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 당시 사대부가의 제의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부록으로 저자의 외조부인 박홍신(朴弘信)의 전기와 어머니 박씨의 행장을 수록했다.16세기 사림파의 시조로 불리는 김숙자와 김종직의 배경과 교유관계 그리고 이 시기 족보편찬 상황과 가문의식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규장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일선의 지명은 그 후 선주(善州).숭선(崇善) 등 몇차례 바뀌었다가 조선 태종이 국령(國令)을 내려 일선군(一善郡)을 선산부(善山府)로 개칭하고 도호부사(都護府使)를 두어 다스리게 한 후 5백여 년이 계속되면서 선산(善山)이라는 지명으로 고착되었다. 이에 따라 일선(一善)의 본관(또는 관향) 또한 선산으로 바뀌게 되었다.그래서후손들이시조로 받들고 본관을 선산김씨(善山金氏)로 하게 되었다.김선궁의 큰아들 김봉술도 문하시중(門下侍中:종1품 정승)에 이르러 부자(父子)가 문하시중(門下侍中:종1품 정승)에 올라 가문을 크게 빛냈다.선산김씨는 김봉술과 삼사우윤(三司右尹고려때 돈과 곡식의 출납회계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의 종3품)을 역임한 김봉문(金奉文)의 형제대에서 세계(世系)가 나누어 졌다.김봉술계파에서는 고려말의 절신(節臣) 김제와 김주,조선조의 좌의정(左議政:정1품 정승)김응기,동인(同人)의 영수 김효원,판서(判書:6조의 정2품 장관)김이원,김세렴 등이 있으며김봉문계에서는 조선 성리학의 거유(巨儒) 김숙자(金叔滋)와 그의 아들이자 조선시대 대표 성리학자로 영남학파의 종조(宗祖)인 점필재 김종직을 배출하여 가문의 명성을 크게 떨쳤다.동인(東人)과 서인(西人)의 대립이 격화되자 그 중심 인물을 모두 중앙에서 내보내자는 율곡 이이의 조정으로 경흥부사(府使:정3품)로 나간뒤 조정분란의 중심이 되었음을 자책하여 중앙관직에 머무르지 않고 지방의 수령을 지냈다. 이조판서(判書:정2품 장관)에 추증되었으며 삼척의 경행서원에 배향되었다. 문집으로 [성암집]이 있다.선산김씨(善山金氏)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58명,무과(武科:무관을 뽑던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에 35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168명,역과에 14명,의과에 5명,음양과에 6명,율과에 2명,주학에 1명 등 289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선산김씨는 지난 2005년의 인구조사에서 총34,422가구에 인구는 109,600여명이었다.한편 김추를 시조로 받드는 선산김씨(들성)도 있으며,인구수는 들성김씨와 같이 조사된것이다.선산(善山)은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일대의 옛 지명으로 신라 눌지왕때 일선군(一善郡)이 었다가, 757년(경덕왕16)에 숭선군(崇善郡)으로 개칭하였고,군위현(軍威縣)과 효령현(孝靈縣)·부림현(缶林縣)등을 관할하였다.1413년(태종13)에 선산군(善山郡)으로,1415년에는 선산도호부(善山都護府)로 승격되었다.화의(和義)라는 별호가 있었다. 1895년(고종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선산군이 되고,1914년 군.면 폐합으로 선산면이 신설,1979년에는 선산면이 선산읍으로 승격하였으며,1995년에는 선산군이 구미시에 통합되었다.선산김씨(善山金氏.들성김씨)선산김씨(善山金氏,들성김씨)는 신라왕실의 후손으로 경순왕(敬順王)의 제8자(子)이며 고려태조의 외손자로 상서령(尙書令:종1품으로 문하시중을 지낸사람이 맡음),일선군(一善君) 김추(金錘)를 시조로 받들며 관향(貫鄕)을 선산(善山)으로 삼았다.그리고 후대에 삼척(三陟),온양(溫陽),희천(熙川),진주(晉州), 원주(原州)로 분관(分貫)하여 계승(繼承)한다.고려때 선산김씨는 크게 성창(盛昌)한 명문사족(名門士族)이다. 문중의 많은 인물이 봉군(封君)되고 시호(諡號)를 받은 것을 비롯하여 수많은 공경장상(公卿將相판서.장군.정승)을 배출하여 명문대가의 반열에 올랐고,그 후예들은 개경(開京)을 중심으로 세거하면서 고려의 융성발전에 지도적 역할을 다하여 크게 공헌하였다.고려말엽에 검교중랑장(檢校中郞將:정5품무관)을 지낸 16세 김문(金文)은 4형제를 두었는데 이로부터 선산김씨는 4대 계파(系派)를 이룬다.큰아들인 김성원(金成元)은 서운관정(書雲觀正:고려때 천문.역수.측후의 일을맡아본 관아의 정4품으로 조선 세종7년에 관상감으로 바뀜)을 지내고 중서령(中書令:종1품)으로 중서령공파(中書令公派) 파조(派祖)가 되었고,그 아들 김기(金起)는 정순대부(正順大夫:고려때 정3품상(上)의 문관품계)로 광주목사(廣州牧使:정3품)를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화의군(和義君)에 봉(封)하여졌으나, 조선이 개국되자 벼슬을 버리고 선산(善山)으로 내려가 고려의 유신(遺臣)으로서 불사이군(不事二君:한사람이 두임금을 섬기지 아니함)의 절의(節義)를 지켜 은거 종신(終身)하였다.화의군(和義君)의 현손(玄孫:손자의 손자)으로 김광필(金匡弼), 김광보(金匡輔), 김광좌(金匡佐) 3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로 부사직(副司直:5위의 종5품으로 현직에 있지 않은 문관.무관.잡직에 있는 사람으로 등용함)을 지낸 김광필(金匡弼)의 후손은 고향에서 제주로도 갈 목적으로 전라도로 떠났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을 뿐 그 후로 소식이 없고,충순위(忠順衛:충순위는 조선때 3위의 하나로 왕족이나 관리 자손,친족들로 조직한 군대로 충무위에 속함)공(公)김광보(金匡輔)는 김현(金俔),김질(金侄),김위(金偉),김신(金信) 4형제를 두어 향지(鄕地)와 충청,전라 등지에 산거(散居)하며 충순위공파종(忠順衛公派宗)을 이루고 있다.참판(參判종2품차관) 김광좌(金匡佐)는 여섯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세인의 추중(推重)을 받았으며 6파(派)로 나뉘어져 현재에 이른다.이를 기점으로 화의군(和義君) 자손들은 선산(善山)을 중심으로 세거 번성하며 후손들의 유행(儒行)을 닦고 절의(節義)를 숭상하고 수많은 자손들이 문무(文武) 대소(大小) 과거에 급제하여 고위관직에 등용되었으며 사대부(士大夫)의 명문으로 경향에 그 명성을 떨쳤다.둘째 아들인 판서공파조 김성부(判書公派祖 金成富)는고려조 전의부정(典醫副正:고려때 의약과 치료를 맡아본 관아인 전의시의 종4품)을 지내고 조선개국 원종공신에 책봉되어 벼슬은 호조판서(戶曹判書:정2품장관)에 이르렀다. 태조가 왕위를 정종에게 물려주고 함흥으로 이거할 때 호종(扈從:왕가를 뒤따름)하였다가 태조가 환도(還都)할 때 복귀하지 않고 함경도 길주에 정착하였다.그 아들인 김경도(金敬道)는 조산대부(朝散大夫:고려 문산계 종5품,1356년(공민왕5)에는 종4품)로 밀양교수(密陽敎授:문과 출신 관원중 성균관 전적등을 교수로 임명했으며 조선때는 종6품)를 지내고,그 후손들은 함경도 단천 고읍을 중심으로 길주(吉州),성진(城津),이천(利川),풍산(豊山),북청(北靑),홍원(洪原) 등에 산거하며 많은 자손들이 관직에 나아가 문중을 빛냈다.광복이후 국토의 분단으로 연락이 두절되고 남하한 2만여 종인만 연락되어 대동종친회를 중심으로 종사를 같이 수행하고 있다.셋째 아들인 좌의정공파조 김성룡(左議正公派祖 金成龍)은 고려말에 산원동정(散員同正:산원은 고려때 중앙군 2군6위 정8품 무관,동정은 6품이하 무관에게 주던 명예직)을 지냈고 조선개국원종공신에 책봉(冊封)되어 벼슬은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綠大夫:정1품 품계)로 좌의정(左議政:정1품 정승)에 이르고 화의부원군(和義府院君)에 봉하여졌다.그의 아들 김탁(金)은 통정대부(通政大夫:정3품당상관품계)로 병조참의(兵曹參議:정3품 국방차관보)를 지냈으며 후손들이 벼슬에 나아가 가계(家系)를 유지 계승하고 경기도 이천(利川)을 중심으로 산거(散居)하고 있다.넷째 아들인 별장공파조(別將公派祖) 김성려(金成呂)는 고려말에 별장동정(別將同正:별장은 고려때는 정7품 무관,조선때는 용호영의 종2품,동정은 6품이하 무관에게 주던 명예직)에 이르고 그 자손은 평안도에 세거하며 그 아들 김선(金選), 손자 김요신(金堯臣),김순신(金舜臣)이 있다는 기록은 있으나 그 행적(行蹟)은 알지 못하고 있다.<선산김씨 집성촌>고려말 광주(廣州) 목사(牧使:정3품)를 지낸 화의군(和義君) 김기(金起)는 고려사직(社稷)의 운명이 다할 무렵 관직을 버리고 관향인 선산 산촌(山村)에 자리잡고 은거하여 생을 마치고 4대독신으로 외롭게 세계(世系)를 계승하였다.그곳에서 여생을 마친 김기(金起)는 하송산에 묻히고 후손이 번성해 가면서 그곳의 골짜기를 벗어나 청룡산과 당산 줄기가 사방으로 병풍처럼 둘러쌓인 남쪽 들판으로 옮겨가자,들성(坪城)이라 명명한 곳이 오늘날의 원호동이다.선산김씨는 중서령공파.판서공파.좌의정공파.별장공파등이 있다.그 후 화의군의 현손(玄孫:손자의 손자)인 이조참판(吏曹參判:종2품차관)김광좌는 현재의 선산군 고아면 원호리와 문성동에 걸친 마을 <들성>에 정착하여 들성김씨(선산김씨의 속칭) 500년의 세거지(世居地)로 명성을 드높였다.그동안 자손이 크게 번성하여 들성에는 200여호의 들성김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해평(海平) 배내(舟內),구미(龜尾) 사창(荊谷),금릉(金陵) 조마(助馬) 숭산(崇山)등지에 집성마을을 형성하고 인근 각지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또 판서공파조(判書公派祖) 김성부(金成富)는 조선개국원종공신으로 호조판서(戶曹判書:정2품 장관)에 올랐고 태조가 왕위 를 정종에게 물려주고 함흥으로 이어할 때 호종(扈從:왕가를 뒤따름)하였다가 3년뒤 태조가 환도할 때 수행치 않고 함경북도 길주땅에 은거하다가 생을 마치고 그의 아들인 조산대부(朝散大夫:고려 문산계 종5품,1356년(공민왕5)에는 종4품)로 밀양교수(密陽敎授:문과 출신 관원중 전적등을 교수로 임명했으며 조선때는 종6품)를 지낸 김경도(金敬道)는 함경남도 단천 고읍(古邑)에 정착하여 지금의 단천군 하다면 금안동 150여호의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그밖에 단천군 내 이중(利中),광천(廣泉),신숙(新宿)등에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으며 인접한 이원(利原),북청(北靑),풍산(豊山),성진(城津) 등지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그리고 좌의정파조(左議政派祖) 김성룡(金成龍)의 후손은 현재 경기도 이천 등지에 살고 있고,별장공파조(別將公派祖) 김성려(金成呂)의 후손은 평안도에 살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선산김씨(善山金氏)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58명,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에 35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168명,역과에 14명,의과에 5명,음양과에 6명,율과에 2명,주학에 1명 등 289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하였다.<들성과 일선김씨 합>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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