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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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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임씨에서 경주임씨,양양임씨,밀양임씨,안의임씨등으로 분관순조때 서예의 대가(大家)로 중국에서도 명성이 높았던 임경한예천(醴泉)은 경상북도 북서족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신라때 예천군(醴泉郡)으로 고쳤으며,935년(고려 태조18)보주(甫州)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13)보천(甫川)으로 고쳤다가,1416년(태종16)에 다시 예천으로 바꾸었다.1914년 용궁군을 병합하였고,1937년 예천면(醴泉面)이 읍으로 승격되었다.예천임씨(醴泉林氏)시조 임춘(林椿)은 고려 의종때 서하처사(處士:세상밖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묻혀 사는 선비)로 일컬어졌으며, 이인로(李仁老).오세재(吳世才)등과 함께 '강좌 7현'의 한 사람으로서 한문과 당시(唐詩)에 뛰어났다.시조 임춘(林椿)은 고려때 평장사(平章事:중서문하성의 정2품 부총리)를 역임한 임계미(林季美)의 후손으로, 고려 의종때 진사(進士:소과에 급제한 사람을 일컬음)를 지내다가,1170년(의종 24) '정중부(鄭仲夫)의 난(亂)'이 일어나자 예천읍 천서리(川西里)로 피신하여 그 곳에서 정착 세거하였다. 후손들은 시조 임춘의 세거지인 예천(醴泉)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고려와 조선조에 걸쳐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임경한(林景翰)은 순조때 서예의 대가로 중국에서도 명성이 높았다.예천임씨는 평택임씨(平澤林氏)에서 분관 했으며,예천임씨에서 분관된 본관은 경주임씨,양양임씨,밀양임씨,안의임씨 등이 있다.예천임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2명,무과(武科:무관을 뽑기위해 보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였으며 초시.복시.전시의 3단계로 나뉘었음)에 6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9명 등17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하였다.인구조사에 의하면 예천임씨는1985년에는 14,321가구 59,721명,2000년에는18,301가구 58,403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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