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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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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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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억령 임백령형제 배출선산(善山)은 경상북도 중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신라 눌지왕때 일선군(一善郡)으로 불렸으며 경덕왕(景德王:제35대임금,재위:742∼765)때 숭선군(崇善郡)으로 개칭, 995년(성종14)에 선주(善州)로 고쳤고,현종때 상주에 속하였다.1895년(고종 32)대구부 선산군이 되었고,1914년 군.면 폐합으로 선산면이 신설된 이래 1979년 선산면이 선산읍으로 승격하였고,1995년 선산군이 구미시에 통합되었다.선산임씨(善山林氏)는 신라말기의 인물인 태사공(太師公:정1품) 임양저(林良貯)를 시조로 받들고 있으며 임양저의 후손 임 만(林蔓)을 1세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조선조에서 명성을 떨친 임억령(林億齡)과 임백령(林百齡) 형제는 선산임씨(善山林氏)를 빛낸 대표적인 인물이다.임우형(林遇亨)의 아들인 임억령(林億齡)은 서기 1525년(중종20) 식년문과(式年文科:3년마다 보던 정기 과거로 대과.동당(東堂)시험)에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거쳐, 금산군수(錦山郡守:종4품수령)로 있을 때,을사사화(乙巳士禍:1545년(명종 원년)7월1일,인종이 죽고 명종이 즉위하자 외숙 윤원형이 인종의 외숙 윤임 등을 무고(誣告)하여 그의 집안 및일당을 죽이거나 귀양보낸 일)가 일어나 아우 임백령(林百齡)이 소윤(少尹)일파에 가담하여,대윤(大尹)의 많은 선비들을 추방하자,이에 자책을 느끼고 벼슬에서 사퇴하였다가 1552년(명종7)에는 동부승지(同副承旨:승정원 정3품 당상관).병조참지(兵曹參知:정3품 국방차관보)등을 역임하였다.을사사화(乙巳士禍)는 1545년(명종 즉위년) 윤원형(尹元衡)일파의 소윤(小尹)이 윤임(尹任) 일파의 대윤(大尹)을 몰아내어 사림이 크게 화를 입은 사건을 말하며 당시 임백령은 호조판서(戶曹判書:정2품장관)였다.임백령(林百齡)은 임억령(林億齡)의 아우로 1519년(중종14)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였으며,후에 을사사화(乙巳士禍)의 주동 인물로 위사1등공신(衛社一等功臣)에 책록되고 숭선부원군(崇善府院君)에 봉해졌으며,우찬성(右贊成:의정부 종1품재신)에 승진하여 선산임씨(善山林氏)를 우뚝 세웠다.선산임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6명,무과(武科:무관을 뽑기위하여보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 였으며 초시.복시.전시로 나뉘었음)에 3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 던 과거)에 9명 등 18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인구조사에 의하면 선산임씨는1985년에는 1,714가구에 7,099명이었으며,2000년에는 3,169가구 10,042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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