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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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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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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임씨(長興任氏)는 임호(任顥)를 시조로 받든다.시조 임호는 중국 절강성 소흥부(紹興府) 출신으로 중국 헌원계임씨(軒轅系任氏)의 109세손이며 소흥임씨(紹興任氏:소흥계 임씨에서 분적)의 시조인 임 약의 손자라고 한다.문헌 승석가부해동설(乘石 浮海東說)에 의하면,송나라에서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고려때는 정6품)과 이부상서(吏部尙書:정3품장관)를 역임했던 임호(任顥)가 고려 정종(靖宗:10대왕,재위 1034~1046)년간에 우리나라에 건너와서 귀화한 것으로 전한다.장흥임씨 대종회(長興任氏大宗會)에서 밝힌 임씨(任氏)의 연원에 따르면,장흥임씨 시조 임호(任顥)는 중국 절강성 소흥부 출신으로 송나라때 우리나라에 건너온 것으로 확인하고 있으며 중국내 임씨(任氏) 세계표에 중국임씨의 시조는 황제(黃帝)의 여덟번째 아들이 우양(遇陽)이며 우양의 107세손이 '약'인데 이사람이 소흥부 임씨의 시조라고 한다.시조 임호(任顥)는 아들 둘이 있는데 큰 아들의 이름은 임전(任銓)이고 계자(季子)는 임관(任瓘)인데 귀하남불명(歸河南不明)이라 기록되어 있어 "종통을 이을 큰 아들 임전은 중국에 두고 계자 임 관을 데리고 고려에 오면서 임의(任懿)로 개명했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장흥임씨는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에도 정경공 임의(任懿)의 행적은 서기1095년에 처음나오고 있는 반면 임억(任億)이라는 사람은 1061년에 나오며 임술광(任述光)이라는 사람은 1017년에 그 활동상황이 나타나는 등 모두 여섯사람의 활동상황이 기록되어 있어 정경공 임의가 살던시기 이전에도 고려에는 임씨(任氏)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또한 정경공의 묘지명에는 "공은 서기 1041년에 출생하였고 나주 정안현(定安縣)사람이며 아버지는 증(贈) 태자태부(太子太傅) 호(顥)이다"라고 본인의 출신지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으므로 시조 이상의 선대(先代)에 대해서는 더욱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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