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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 장 길(張吉)은 청해진대사로 해상권을 장악한 장보고의 현손안동장씨 시조의 처음 이름은 장길(張吉)이며 자는 영보(寧父),호는 포음(圃蔭),시호는 충헌이다. 나중에 정필(貞弼)로 개명하였다.장길(張吉)은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라는 직함으로 해상권을 장악하며 활약한 장보고(張保皐) 장군(將軍)의 현손(玄孫:고손자)이다. 서기 836년 신라의 왕위계승분쟁에서 패배한 김우징(金祐徵:신무왕)계열의 세력들이 청해진에 도피하고 재기를 모색하는 가운데, 서기 838년 재차 왕위를 둘러싼 정변이 일어나자, 장보고 장군은 군대를 경주로 출병하여 그들을 강력히 지원함으로써 신무왕(神武王)의 즉위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이에 왕은 감사의 뜻으로 장보고 장군을 감의군사(感義軍使군사는 전쟁 중에 군의 명령으로 교섭의 임무를 띠고 적군에 파견되어 휴전이나 항복을 권고하는 사람을 말하며,표지(標識)로 흰 기를 사용함)로 임명하는 한편 장군의 딸을 자부(子婦)로 받아들일 것을 약속하였다.하지만 신무왕이 갑자기 서거(逝去)하고 문성왕(文聖王)이 등극한 후 서기 842년 3월,왕은 전왕(前王)의 약조에 따라 장보고 장군의 딸을 제2왕비로 맞아들이고자 하였으나, 조정의 귀족들은 중앙정부를 위협할만한 청해진의 세력이 중앙정계로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하여 이를 강력히 반대한 결과 무산되고 말았다.이를 계기로 청해진과 중앙정부 사이의 반목과 대립의 골이 깊어 가던 중,조정에서 청해진으로 파견한 염장(閻長)에 의해 장보고 장군이 암살됨으로써 납비(納妃)문제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출처-<삼국사기.신라본기>본래 염장은 신라 하대의 무장(武將)으로 장보고 장군의 진영에 거짓 투항하여 신임을 받은 후, 자신을 위해 준비한 주연석상(酒宴席上)에서 장군을 살해하고 돌아갔다.그 결과 청해진이 붕괴되어 장군의 가족과 막료(幕僚)들은 원래 장보고 장군의 활동무대이던 당나라의 적산촌(赤山村)으로 돌아갔고, 대부분의 주민들은 벽골군(碧骨郡:전라북도 김제)으로 강제 이주되고 말았다.장군의 증손(曾孫)인 장원(張源)은 대사마대장군(大司馬大將軍:대사마는 병조판서 대장군은 종3품)으로 당의 절강성(浙江省) 소흥부(蘇興府)에 거주하면서, 그곳에서 아들 장길(張吉)을 얻었다. 그런데 이때 당의 정국은 격변기로 크게 혼란하여 민심(民心)이 매우 흉흉하였다.그래서 안주할 곳을 물색하던 장원(張源)은 증조(曾祖)가 살던 신라로 다시 이주할 것을 결심하고, 다섯살의 장길(張吉)을 등에 업고,오랜 항해 끝에 명주(溟洲:강릉)에 도착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시조를 당나라 절강성(浙江省) 소흥부(蘇興府)사람이라고도 한다.문헌과 <안동장씨대동속보>에 따르면, 시조 장정필(張貞弼)은 888년(진덕여왕 2)에 중국 절강성 소흥부에서 대사마대장군(大司馬大將軍) 장원의 아들로 태어났다.장정필(張貞弼)이 5세가 되던 서기 892년(진성여왕 4),아버지 장원이 그곳의 정치가 문란하여 어지러운 난국을 피하기 위해,우리나라에 망명해 올때 아버지와 함께 강원도 강릉에 정착하였다가, 경북 노전으로 옮겨 살았다고 한다.그가 18세때 정조사(正朝使:정월 초하룻날 새해축하하러 중국에 가던사신)를 따라 중국에 들어가 24세때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였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입산하여 제자를 가르쳤다.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명성이 천자에까지 알려져, 한때 벼슬이 이부상서(吏部尙書:고려때는 정3품 장관)에 올랐으나, 벼슬을 버리고 우리나라에 다시 들어와 경북 인동의 노전에서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고 한다.장정필은 서기 930년(고려 태조13,신라 경순왕 4) 고창 성주(城主)인 김선평,판관(判官:외직무관으로 5품에서 6품) 김행(金幸)과 함께 태조 왕건을 도와 후백제 견훤의 군대를 물리치는데 공을 세워, 삼한벽상(三韓壁上)에 책록되고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아부공신(亞父功臣)에 녹권되어 태사(太師) 및 영운사에 오르고 안동군(安東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안동으로 하였다. 삼한벽상은 공신당에 초상이 그려진 공신을 말하며 삼중대광은 정1품의 품계,그리고 태사(太師)는 정1품 명예직이다.태조가 3공의 공을 높여 김선평에게 대광(大匡:정1품)을 장길과 김행에게는 대상(大相태봉.고려초기에 둔 16등급 가운데 일곱째 품계로 후에금자흥록대부로고쳐 문관의 품계만 사용)을내리고,고창을 승격하여 '안동부'로 하고 안동을 '3공'의 식읍(食邑:나라에서 공이 많은 신하에게 내리어 그곳의 조세를 개인이 받아쓰게 한 고을)으로 하사했다.태조 왕건은 김행을 '능병기달권'즉 "기예에 밝고 권세에 능하다"며, 권씨(權氏)로 사성(賜性)하고,삼태사와 같이 안동을 본관으로 삼아 안동장씨,안동김씨,안동권씨가 생겨나게 되었다.장정필은 경북 안동의 노산서원과 안동시 북문동 삼태사 묘에서 제향한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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