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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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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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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양(丹陽)은 고려초에 단산(丹山)으로 되었고 1018년(현종9) 원주(原州)에 속했다가, 뒤에 충주(忠州)로 이속되고,고려 고종때 고을사람들이 '합단(哈丹)의 난'을 물리친 공으로 감무(監務:작은 현에 중앙에서 파견한 감독관)를 두었다.1318년(충숙왕 32)지단양군사(知丹陽郡事)가 되었다가,1413년(태종13)에 군이되고 1895년(고종32)에는 충주부(忠州府),1914년 영춘군(永春郡)을 병합하여 단양군(丹陽郡)이 되었다. 단양장씨(丹陽張氏)는 본관이 같으면서 계보(系譜)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다. 선단양(先丹陽)으로 불리는 계통은 태사공(太師公) 장정필(張貞弼)의 증손인 장지현(張之賢)의 아들 장순익(張順翼:시호 충정)이 고려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고려때 문산계 29계중 제3계로 종2품 상(上)계로 1361년에는 정2품으로 승격되어 1275년 명칭이 '광정대부'로 바뀜)를 거쳐,문하시중(門下侍中:고려때 정사를 도맡아 보살피던 종1품 정승)에 이르러 단양군(丹陽郡)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단양(丹陽)으로 하였다. 후단양(後丹陽)으로 불리는 계통은 장씨의 도시조 태사공(太師公) 장정필(張貞弼)의 14세손으로 결성부원군(結城府院君)에 봉해졌던 장사(결성장씨 시조)의 둘째아들 장무용(張戊用)을 관조(貫祖)로 하는 계통이 있다. 단양장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3명,무과(武科:무관을 뽑기위하여 보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였으며 초시.복시.전시의 3단계로 나뉘었음)에 14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27명,의과에 1명,율과(律科:형률에 능통한 사람을 등용하던 과거)에 2명 등 47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하였다.인구조사에 의하면 단양장씨는 1985년에는 7,365가구에 30,521명이었으며,2000년에는 10,541가구에 33,295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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