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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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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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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례(求禮:봉성의 별호)는 전남 북동부에 있는 지명으로,신라 경덕왕때 구례현으로 고쳐 곡성군에 속하였다. 고려초에는 남원부에 속하였고,1143년(고려 인종 21)에 감무(監務:고려 중기부터 조선초까지 작은현에 중앙에서 파견한 감독관)를 두었으며,1423년(태종13)에 현감(縣監:종6품)을 두었다. 1499년(연산군5)에는 수공업.목축.농경 등에 종사하는 천민집단부락을 만들어 남원부에 속하게 하였다가,1507년(중종2)에 현(縣)으로 부활시켰다.1895년(고종32)에 군(郡)으로 승격시켜 남원부의 관할에 두었다가,1906년(광무10)에 전라남도에 이관되었고 1963년에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례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구례장씨(求禮張氏)의 시조 장악(張岳:자 악,호 이재,시호 양간)은 안동장씨(安東張氏) 시조 장정필(張貞弼:장씨의 도시조)의 21세손이다. <구례장씨족보>의 연원기록에 의하면 시조 장악은 고려 인종때 70세의 문하시중(門下侍中:백관을 통솔하고 서정을 총리한 종1품 정승)으로 대궐에 입조할 때마다,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여 왕이 그 까닭을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신이 출생하여 자란곳이 봉성(鳳城)인데 고향이 생각이 나서 그렀습니다" 라고 하자, 왕이 그자리에서 봉성(鳳城)을 식읍(食邑:나라에서 공이 많은 사람에게 그곳의 조세를 개인이 받아쓰도록 한 고을)으로 하사하고 봉성군(鳳城君)에 봉했다고 한다.그래서 후손들이 봉군지역인 구례(求禮)를 본관으로 하였다. 구례장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2명,무과(武科:무관을 뽑기위하여 보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였는데 초시.복시.전시의 3단계로 나뉘었음)에 4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5명 등 11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하였다.인구조사에 의하면 구례장씨는1985년에는 2,428가구 10,670명이었으며,2000년에는 3,327가구 10,570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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