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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개인 긴 둑에 풀빛은 진한데 남포에서 그대를 보내니 노랫가락 구슬퍼라...정지상(鄭知常) 고려의 왕을 황제로 칭할 것을 주장서경정씨(西京鄭氏)는 고려의 삼성(三聖) 정지상(鄭知常)을 시조로 받든다.정지상(鄭知常)은 고려 예종 9년에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고 1127년(인조 5) 좌정언(左正言:문하부 벼슬,조선시대에는 정6품)으로 있을때 이자겸(李資謙)을 제거한 공을 믿고발호하는 척준경(拓俊京)을 탄핵하여 유배하도록 하였으며 서기1129년 좌사간(左司諫:임금에게 잘못을 간언하던 벼슬)으로 윤언이 등과 함께 시정(時政)의 득실을 논하는 상소를 올렸다.묘청(妙淸)과 백수한(白壽翰)의 음양비술(陰陽秘術)을 깊이 믿어 한때는 세사람을 삼성(三聖)이라 칭했으며 도읍을 서경(西京)으로 옮길 것과 북쪽의 금(金)나라를 정벌하고 고려의 왕을 황제로 칭할 것을 주장하였다.시조 정지상(鄭知常)의 선세계(先世系)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그는 1114년(고려 예종9) 문과에 급제하고 좌정언(左正言:조선때는 정6품,고려 문하부의 벼슬로 좌습유(左拾遺)의 고친 직제)을 지냈으며서기1130년 지제고(知制誥:고려때 국왕이 반포하는 조서,교서 등의 글을 지어바치는 일을 맡아보던 한림원.보문각의 관원이 겸직하던 관직)로서 왕명을 받아 곽여(郭輿)를 위해 산재기(山齊記)를 지었고 그 후 기거랑(起居郞:고려때 문하부의 정5품)이 되었으며 묘청의 난(妙淸 亂) 때 김부식(金富軾)에 의해 참살(斬殺)당했다.정지상은 역학(易學)과 노장철학(老莊哲學)에도 조예가 깊었고 시.서.화(詩書畵)에 뛰어났다.그의 후손 정응린(鄭應麟)은 1510년(중종5) 식년문과(式年文科:식년(3년)마다 보던 정기과거시험)에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군수(郡守:종4품).지평(持平:백관을 규찰하던 사헌부의 정5품).장령(掌令:사헌부의 정4품)에 올랐으며이어 사간(司諫:왕에게 간언하던 사간원의 종3품).직제학(直提學:집현전의 종3품,홍문관.예문관의 정3품)을 지내고 1527년에는 부평부사(府使정3품)가 되었으며, 동부승지(同副承旨:승정원의 정3품)와 대사간(大司諫:사간원의 정3품) 등을 역임하였다.인구조사에 의하면 서경정씨는1985년에는 총 65가구에 307명이었으며,2000년에는 104가구에 265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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