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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문.지리.병법에 정통 50년간 입조한 정탁영의정에 추증된 족보의 대가 정곤수(鄭琨壽)예학(禮學)및 모든 분야에 달통한 당대의 명문장가 한강 정구(鄭逑)“정구 위패” 관산서원 사당터에서 2009년 7월 발견청주정씨(淸州鄭氏) 시조 정극경(鄭克卿)은 고려 의종때 중랑장(中郞將:정5품)을 지냈다.청주정씨(淸州鄭氏)의 을미가승보 서문(乙未家乘譜 序文)에 의하면 "청주정씨(淸州鄭氏)는 어느시대에 시초가 되었는지 상세히 알 수 없으나 중랑장부군(中郞將府君:정극경鄭克卿)이 고려중엽에 벼슬하게 되어 1세조가 되었다"고 하였다.따라서 정극경(鄭克卿) 이상의 선계(先系)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시조의 5세손 정 해가 고려 원종때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고,광정대부(匡靖大夫:문산계 제3계이며 금자광록대부가 고쳐진것으로 종2품품계)로 도첨의 찬성사(都僉議 贊成事:도첨의는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의 직제이며 찬성사는 정2품)등을 지냈으며 시호는 장경(章敬)이다.정극경의 6세손 정 책은 고려 충숙왕때 충주목사(忠州牧使:정3품으로 관찰사 아래에 있는 목을 다스리던 외관직)를 역임하고 통헌대부(通憲大夫:고려때 종2품 문관 품계),판선공사(判繕工事)로 삼중대광(三重大匡:정1품 품계)에 이르렀으며 청하군(淸河君:청하는 청주의 옛이름)에 봉해져 후손들은 본관을 청주로 하였다.정극경의 손자 정 의가 고려 고종때 대장군(大將軍:종3품)을 지냈으며,그의 손자 정 해는 도첨의 찬성사(都僉議 贊成事:정2품)에 올라 지공거(知貢擧:고려때 과거를 보이던 시관 試官)를 지내고 판삼사사(判三司事:종1품 재신이 겸하던 고려때 삼사의 으뜸 벼슬)에 이르렀다.정책의 아들 정오는 고려 공민왕때 공신(功臣)에 올랐으며정탁(鄭擢)이 조선개국1등공신으로 청성군(淸城君)에 봉해져 가문을 빛냈다.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 정이충(鄭以忠)의 아들인 대사헌(大司憲:백관을 규찰하던 사헌부의 종2품 검찰총장) 정탁(鄭琢)은 명종때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고, 선조 때 춘추관(春秋館:시정의 기록을 맡아본 관아)의 기주관(記注官:시정의 기록을 맡은 기록관)으로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정탁은 여러 관직을 역임한 후 우찬성(右贊成:의정부 종1품)으로서 사은사(謝恩使:우리나라에 호의를 베풀었을때 사례하기 위한 사신)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외교적인 공적을 쌓았다.정탁(鄭琢)은 천문.지리.상수(象數).병법(兵法)에 이르기까지 정통했으며 서기1604년 (선조37)호종공신3등(扈從功臣三等)으로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서원은 청주의 옛이름)에 봉해졌고 봉조하(奉朝賀: 2품 이상의 벼슬이 그만둔 후에 특별히 시키던 벼슬)에 이르렀다.그 밖의 인물로 영의정(領議政:정1품 정승)에 추증된 정곤수(鄭琨壽)는 정총의 6대손으로 호는 백곡(柏谷)이다.그는 임진왜란때 명나라에 들어가 청병한 공으로 일등공신이 되었고 서원부원군에 봉군되었으며 특히 보학(譜學)에도 밝아 당대 제일인자로 평가 받았다.정곤수의 아우 한강 정구(鄭逑)는 신동으로 7.8세때 이미 대학과 논어를 익혀 대의에 통하였고 오건(吳健),이퇴계,남명 조식 등에게 글을 배웠으며 학자로서 이름이 높았다.정구(鄭逑)는 대사헌(大司憲:사헌부 종2품 검찰총장,감사원 감사위원)을 지내고 이조판서(吏曹判書:정2품 장관)와 영의정(정1품 정승)에 추증되었다.선조때 이름난 학자 정사성(鄭士誠)은 태릉참봉(泰陵參奉:종9품)을 거쳐 현감(縣監:종6품)을 지낸 후 벼슬에서 물러나 후진양성에 진력하여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판결사(判決事:조선시대 공사(公私)의 노비문서의 관리와 노비소송을 맡아보던 관아로 세조 13년(1467)에 변정원을 고친 장례원(掌隷院)의 정3품)를 지낸 정사신(鄭士信)이 뛰어났고,전라도도사(全羅道都事:지방관을 규찰하던 종5품)와 춘추관 기주관(春秋館 記注官:시정의 기록을 맡아보던 기록관)을 역임한 정장(鄭樟)이 가문을 빛냈다.관찰사(觀察使:종2품 감사)를 지낸 정옥(鄭玉)은 병조참판(兵曹參判:종2품 국방차관)을 거쳐,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종2품서울시부시장)을 역임한 정내성(鄭來成)과 함께 청주정씨 가문을 더욱 빛냈다.청주정씨(淸州鄭氏)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18명,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였으며 초시.복시.전시의 3단계였음)에 4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과거)에 33명,의과에 1명 등 56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인구조사에 의하면 청주정씨는1985년에는 8,802가구에 36,308명,2000년에는 12,271가구에 39,256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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