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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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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 장원급제 두번한 의병장 고경명우리나라의 고씨(高氏)는 양씨(梁氏).부씨(夫氏)와 함께 제주도의 대표 씨족이다.이들 삼성(三姓)은 시조의 탄생에 대하여 제주도에는 삼성혈(三姓穴)전설이 유명하다.동국여지승람과 고려사에 의하면,오늘날 제주도인 탐라국에는 처음에는 만물과 사람이 없었는데 삼신인(三神人),즉 고을나(高乙那).부을나(夫乙那).양을나(良乙那)가 한라산 북쪽 모흥혈에서 솟아나왔다고 한다.고려사(高麗史)(1451) 권57에..."이들 3신은 수렵을 하며 살았는데 어느날 동쪽 바다에 자주색 흙으로 봉한 나무궤짝이 떠내려와 건져 열어보니 일본국(日本國)에서 왔다는 푸른 띠를 맨 사자(使者)가 푸른 옷을 입은 아름다운 세 공주를 데리고 나왔는데, 3 신인(神人)이 각각 이 공주들과 혼인하고 이들이 가지고 온 오곡(五穀)종자의 씨앗과 송아지,망아지로 목축과 농사를 짓기 시작하여 탐라국의 지배씨족이 되어 태평성대를 이루며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고씨는 한자 표기를 높을 고(高)자가 아니라 성 고씨로 씀)"일본국"은 신화적인 용어로 구체적인 국명이라기보다는 '해가 뜨는 나라'로 이해된다고 하며,고씨가전(高氏家傳)에서는 "벽랑국(碧浪國)"이라 하였는데 "푸른 바다 저쪽의 나라"라는 뜻이라 한다.3신인은 혼인후 화살을 쏘아 각각 영역을 정하였는데,양을나는 첫째 터전(제일도 第一都:一徒洞)을 본거지로 삼았다고 고려사(高麗史)에 기록되어 있다. 한편 양(良)은 후에 양(梁)으로 고쳐졌다.제주에는 이들 신인들이 솟아 나왔다는 삼성혈(三姓穴:제주시 이도1동 1313번지,사적 134호)과 세 공주가 타고 온 나무궤짝이 발견된 해안황루알,삼신인이 세 공주와 혼인한 혼인지(婚姻池:제주기념물 17호), 이들이 화살을 쏘았다는 삼사석(三射石:제주기념물 4호)등이 전한다.삼성혈(三姓穴)은 제주특별자치시 이도1동 1313번지에 있는데, 이곳 3개의 구멍속에는 빗물이나 눈이 스며들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주변의 수백년 이상된 고목들은 3개의 구멍(혈)으로 향하고 있으며 마치 절을 하고있는 형상이다.3신인(三神人)중에서 고을나(高乙那)가 고씨의 연원을 이루었으므로 고씨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고 있으며 탄생 설화의 본거지인 제주를 본관으로 하여 오늘날 현달하는 세계(世系)를 계승하고 있다.탐라국(耽羅國)은 시조 고을라왕( 乙那王)이 제주도에 세운 고대왕국으로써 삼국시대에는 구한(九韓) 중 네 번째 되는 나라로 불릴만큼 가장 번성 하였으며 섬나라 특유의 독특한 문화를 이룩하였다. 영주지에 탐라의 개국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삼신인이 인간세계를 이루고 9백년이 지난 뒤에 인심이 고씨( 氏)에게 모아지니 임금이 되어 탁라국( 羅國:탐라국 耽羅國)을 세웠다. (厥後九伯年之後 人心咸歸 氏 以 爲君國號 羅)"이같이 탐라국을 세울 수 있었던 과정을 고찰하여 보면 최초의 사회구성체인 3성(三姓,부씨.양씨.고씨)의 각 씨족집단은 자연히 우세한 고씨( 氏)의 씨족사회를 중심으로 뭉쳐지므로 대집단인 부족연맹사회(部族聯盟社會)가 형성되고 부족국가(部族國家)를 이룩하게 되었다.(나라의 명칭은 처음에는 羅,毛羅,瀛州라 하였으며 일반적으로 耽羅라 통칭하고 있다.)국가란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그 개념(槪念)상 일정한 영토(領土)를 가지고 있고, 그곳에 거주하는 민족(民族) 집단이 구성되어 있고, 그러한 모든 것을 관할하고 통치하는 정치제도가 있어야 성립할 수가 있다.탐라(耽羅)의 건국연대에 관하여는 시조 고을나왕( 乙那王)이 인간세계를 이룩한 후 9백년이지났다고 하였을 뿐 확실한 연대를 알 수 없으나 탐라국왕세기(耽羅國王世紀)에 의하면 기원전 2337년경이라 하였다.그러나 탐라의 건국연대가 문헌상 뚜렷이 밝혀진 삼국(三國)의 건국연대 보다 훨씬 앞서 있고오래된 것으로 보는 이유는 탐라의 건국을 부족국가(部族國家)로서 성립한 시대부터 보는데 비하여, 삼국(三國)의 건국은 고대국가(古代國家)로 성립한 시대부터 보기 때문이다. 국가의 발달 단계는 먼저 부족국가가 형성되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나중에 형성된 것이 고대국가이다.부족국가(部族國家)의 특색은 부족연맹체로서 부족장의 지위가 독자적이었으며 사회적 형태는 혈연사회(血緣社會)였다고 한다.고대국가(古代國家)의 특색은 왕권의 강화와 동시에 세습제도(世襲制度)가 이루어지고 중앙집권 체제가 확립되었다고 한다.이러한 국가형태의 변천과정을 통하여 본다면 탐라는 시조 고을나왕( 乙那王)이 나라를 세운 것은 부족국가의 형태로써 그 후 신라초 15세손 고 후( 厚) 왕에 이르러 고대국가(古代國家)로 발전하게 되었다.고씨(高氏)는 그후 후손의 주세거지 및 작호(爵號)에 따라 15개의 본으로 분파되었는데, 시조 고을나의 45세손 자수왕(自竪王)의 태자인 말로(末老)는 제주고씨, 말로의 증손 고공익(恭益)은 청주고씨,또 다른 증손 고영신은 개성고씨,말로의 10세손 고중(高 仲,일명 봉림)은 장흥고씨,말로의 후손 고종필은 연안고씨 등으로 분관 하였고,옥구.용담.횡성.담양 등의 분파가 있으나 우리나라 모든 고씨(高氏)는 고을나(高乙那)를 도시조(都始祖)로 받들고 '제주고씨(濟州高氏)중앙종문회'로 통일하였다.합본된 고씨(合本高氏)는 개성,고봉(고양),금화,담양,안동,연안,옥강,용담,의령,장흥, 제주,청주,회령,횡성고씨등이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본관을 개성, 안동, 장흥, 횡성, 회령 등 122본까지 기록되어있고,고씨는 2000년 인구조사때는 51개 본관에 총 인구는 435,839명이었다.그러나 모두가 <제주고씨>에서 분관된 것이며,현재는 <제주고씨 중앙종문회>를 만들어 대동단결하고 있다.개성고씨의 파조 고영신(高令臣)은 고려 예종때 참지정사(參知政事종2품)를 지냈으며,현재는 본관을 제주로 단일화하여 제주고씨 양경공파(良敬公派)이다. 안동고씨 파조는 조선시대에 군수(郡守종4품)를 지낸 고응척(高應陟)으로현재는 본관을 제주고씨로 단일화되어 제주고씨 중앙종문회를 만들었다.또한 장흥고씨(長興高氏혹은 장택고씨 長澤高氏)는 고중연을 파조로 받들고 있다. 고중연은 고말로(高末老)의 10세손으로 고려말 남쪽에는 왜구가 출몰하고 북쪽에는 홍건적이 침입해 오는 시대상황 속에서 활동했던 사람이다. 그는 1361년(공민왕 10)에 홍건적이 압록강을 넘어 2차 침입때 개경이 함락되는 지경에 이르자 왕을 모시고 복주(福州:안동)로 피난을 갔다. 이 때의 공으로 호종공신(扈從功臣)으로 장흥백(長興伯)에 봉하여져 본관으로 장흥으로 했다.현재는 본관을 제주로 단일화하여 제주고씨 장흥백파(長興伯派)이다.용담고씨 파조는 고려때 삼중대광(三重大匡:정1품품계)에 오른 고여경(高餘慶)으로 제주고씨에서 분적되었으나,현재는 제주고씨와 합본하여 제주고씨 중앙종문회를 만들었다.청주고씨(淸州高氏,상당고씨)의 파조는 고려때 검교장작소감(檢校將作少監)을 지내고 상당군(上黨君:상당은 청주고호)봉해진 고공익(高恭益)이다.현재는 제주고씨와 합본하여 제주고씨 상당군파(上黨君派)이다.토산고씨(황해도 토산)의 파조는 조선조에 이조참판(吏曹參判:종2품 차관)을 지낸 고광인(高匡仁)이며,현재는 제주고씨와 합본하여 제주고씨 중앙종문회를 만들었다.그리고 횡성고씨의 파조는 고인비(高仁庇)이며,현재는 본관을 제주로 단일화하여 제주고씨 화전군파(花田君派)로 되어있다.제주고씨는 고태정(高台鼎)이 1459년(세조5) 식년시(式年試:나라에 경사가있을때 보던 과거)문과(文科:대과)의 을과(乙科)에 장원급제하는 등 문과(文科대과)에 3명의 장원급제자를 포함 35명,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에 81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과거)에 56명,역과에 38명,의과에 6명,음양과에 2명,율과에 9명 등 모두 227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했다.제주고씨는 지난 2000년에는 총 100,954가구에 인구는 325,950명이었다.제주고씨(濟州高氏)는 조선시대에 장원급제자 3명을 포함하여,문과(文科:대과)에 35명,무과(武科:무관을 뽑던과거로 시험은 무예와병서)에 81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시험)에 56명,역과에 38명,의과에 6명,음양과에 2명,율과에 9명 등 모두 227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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