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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씨(鄭氏) 2000년의 대종(大宗),조선때 과거급제자 182명왜군 평조신(平調信)이 무용(武勇)을 극찬한 흑의장군 정발경주정씨(慶州鄭氏)는 이책의 우리나라 정씨유래(鄭氏由來)에서 밝힌바와 같이삼국사기와 [동경지]에 기록된 대로 경주정씨(慶州鄭氏)의 도시조(都始祖)는 신라 초기 6부 가운데 본피부(本彼部:취산진지촌)의 촌장이던 지백호(智伯虎)를 원조로 받들고 있다.지백호(智伯虎)는 기원전 117년(한무제 원수6) 경주 화산에 강림하여 부족국가이던 취산 진지촌을 다스리면서 신라 건국의 모체를 이루었다.그는 박혁거세를 왕으로 옹립한 공으로 신라개국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되고 낙랑후(樂浪侯)에 봉해졌다. 경주정씨의 시조로 받들어진 것은 서기 32년(신라 유리왕 9)에 시조의5세손 동충(東沖)이 정씨(鄭氏)로 사성(賜姓) 된데서 비롯된다.그리하여 경주정씨는 지백호를 시조로 받들며 기세(起世)하고 있으며후손중 본손은 문헌공파(文獻公派),양경공파(良景公派),월성위파(月城尉派),평장공파(平章公派)등4파(派)로이어졌으며,지손계통에서는영일(迎日),동래(東萊),온양(溫陽),초계(草溪),하동(河東),진양 등 30여성씨로 분관 되어 우리나라 정씨의 대종(大宗)을 이루고 있다.도시조 지백호는 신라 법흥왕때 시호는 문화로 받았고 656년(태종무열왕 3)에 감문왕에 추봉되었다.경주정씨는 우리나라 범정씨(汎鄭氏)의 대종(大宗)이다.경주정씨 본종은 계림(鷄林).월성(月城)등으로 쓰여지다가 월성군 정진원(鄭珍原:월성군月城君)때 경주정씨(慶州鄭氏)로 하게 되었다.정진원(鄭珍原)은 고려때 문과에 급제하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문산계 29계중 제3계로 1361년에 정2품으로 됨)로 병부상서(兵部尙書:정3품 국방장관)겸 군기시윤(軍器寺尹:고려.조선때 병기의 제조를 관장한 관청으로 기감이었던것을 1367년(공민왕11)에 군기시로 바꿈,으뜸벼슬은 정1품 도제조 1명,상서나 참판,무관벼슬 등 2명,정3품 1명)을 지냈다.그는 이어 정당문학(政堂文學:중서문하성의 종2품)에 올라 평장사(平章事:중서문하성의 정2품부총리)를 역임하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문정공 정진원(文政公 鄭珍原)이 본관을 경주로 고쳐부르게 되어 경주정씨(慶州鄭氏)로 삼아 세계(世系)를 잇고 그를 중흥시조(中興始祖)로 받들고 있다.경주정씨(慶州鄭氏)의 실질적인 시조 문정공(文政公) 정진원(鄭珍原)은 도시조 지백호(智伯虎)의 40세손이다.정진원(鄭珍原)의 5세손 정현영(鄭玄英),정공단(鄭公但),정광한(鄭光漢)도 모두 관직에 올라 가문을 중흥시켰다.월성군(月城君) 정자초(鄭子楚)의 아들 정휘(鄭暉)는 고려 충혜왕때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고,공민왕때 첨의정승(都僉議政丞:백관을 통솔하고 서정을 총리한 종1품으로1308년에 정승으로 고침)에 올라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또한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한성부의 벼슬)를 지낸 정희계(鄭熙啓)는 월성군 정휘(鄭暉)의 아들로 이성계를 도와 조선개국에 공을 세우고,개국공신1등(開國功臣一等)으로 상장군(上將軍:정3품,나중에 상호군으로 개칭)에 올라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져 부자(父子)가 군(君)에 봉군되어 경주정씨를 크게 빛냈다.세종때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사예(司藝:성균관의 정4품)등을 거쳐 좌찬성(左贊成:의정부 종1품)에 추증된 정지년(鄭知年)의 아들 4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가문을 빛냈다.큰아들 정효항(鄭孝恒)은 세조때 부교리(副校理:홍문관의 종4품)로서 좌익원종2등공신(左翼原從二等功臣)에 오르고 성종때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등과 함께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성종의 명으로 편찬한 지리서 노사신,서거정 등이 편찬함,중종때 이행이 증보한 '증보 동국여지승람'이있음)을 편찬하였으며,이어 동국통감(東國通鑑)을 편수한뒤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왕명을 출납하던 중추부의 정3품)에 올랐다.정효상(鄭孝常)은 성종때 좌리공신에 녹훈되어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졌고 공조판서(工曹判書:정2품 장관으로 사도공이라함)와 이조판서(吏曹判書정2품 장관)를 거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중추부는 왕명의 출납과 궁중의 숙위를 맡아봄,정2품)에 이르렀다.명종때 이름난 성리학자 정지운(鄭之雲)은 김안국(金安國)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고 천명도설(天命圖說)을 저술하여 퇴계(李退溪)등의 절찬을 받았다고 한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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