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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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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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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가 벽골제(碧骨堤) 수호신 백룡(白龍)의 부탁으로 벽골제를 빼앗으러 온 흑룡(黑龍)을물리쳐 흑룡이 떨어뜨린 '비늘'을 나라에 진상 이름 떨쳐 -벽골제의 전설-김제(金堤)는 전라북도 서쪽에 위치하는 지명으로,백제시대에는 벽골군(壁骨郡)인데 신라 경덕왕이 김제군(金堤郡)으로 고쳤으며,1403년(태종3)군(郡)으로 승격하였다.1914년 만경군(萬頃郡)과 금구군(金溝郡)을 병합하였다.김제조씨(金堤趙氏) 시조는 고려 고종때 상장군(上將軍:정3품)을 지낸 조연벽(趙連壁)이다.문헌에 따르면 조연벽(趙連壁)은 1231년(고려 고종 18) 몽고(蒙古)의 '살리타이'가 침략했을때 대장군(大將軍:종3품)에 임명되어, 부장(副將) 김윤후(金允侯)와 함께 처인성(處仁城:현재 경기도 용인시)에서 몽고군을 소탕한 공으로, 상장군(上將軍정3품)에 올라 벽성군(碧城君:벽성은 김제의 옛이름)에 봉해지고 좌정승(左政丞:종1품 정승)에 추증되었다.그리하여 후손들은 조연벽(趙連璧)을 시조로 받들고 봉군지인 김제(金堤)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그가 태어난 김제시 용두동(龍頭洞:현재 옥산리) 벽골제(碧骨堤:삼한시대에 조성된 우리나라 최고의 댐) 연못에 얽힌 유명한 전설이 <김제조씨세보(金堤趙氏世譜)>에 전해지고 있다. 김제조씨는 조선시대에 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였으며 3년마다 실시됨)에 4명 사마시(司馬試:조선때 생원과 진사를 뽑던 과거로 소과)에 19명 등 23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인구조사에서 김제조씨는 1985년에는 총 5,923가구에 26,465명이었으며,2000년에는 4,501가구에 14,509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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