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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조씨(曺氏)는 창녕조씨(338,222명).가흥조씨(1,609명).강릉조씨(3,551명).광주조씨(1,296명).남평조씨(1,398명-창녕에서 분관).능성조씨(507명-창녕에서 분관).수성조씨(755명-창녕에서 분관)안동(1,266).영광(728명).영암(804).인천(1,312).장흥(618).진주(1,025).창산(429).창원(1,278).청도(334-창녕분관).청양(3,838).평창(1,055).함평(1,794).화순조씨(665)등 총 20본관이었으나, 대부분 창녕조씨에서 분관하였거나 세거지명이다. 인구는 2000년에는 총 362,817명이었다.조씨의 득성유래(曺氏 得姓 由來)경남 창녕(昌寧)지방에는 조씨(曺氏)의 득성(得姓)과 시조 태사공(太師公:태사는 정1품) 조계룡의 탄생설화가 전해져 오고있다.문헌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때의 한림학사(翰林學士:임금의 교서를 짓는일을 맡아본 고려때는 종2품,정4품,중국에서는 한림원에 속하여 조칙의 기초를 맡아보던 벼슬) 이광옥(李光玉)의 딸 예향(禮香)이 혼기(婚期)에 이르렀을 때 병을 앓게 되어 백약이 무효했다.학사(學士)인 이광옥이 크게 염려하던 중, 어느 신승(神僧)의 말에 따라 창녕의 화왕산(火旺山) 정상에 있는 용지(龍池)라는 연못에 가서 목욕재계하고 기도를 올리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학사 이광옥은 딸 예향을 그곳에 보냈으며, 예향이 그곳에 가서 목욕기도를 하자 병이 완쾌되면서 태기가 있었는데, 어느날 밤 꿈에 금관을 쓰고 옥대를 두른 남자가 나타나더니 "이 아이의 아버지는 동해의 용왕이다"하고 사라졌다.(일설에는 용의 아들 옥결(玉 )과 만나 잉태하였다고 함) 그 후 10달이 지난 진평왕 48년에 아이를 낳으니 용모가 준수하고 겨드랑이 밑에 "조(曺)"자가 붉게 새겨져 있었다.이를 이상히 여긴 학사 이광옥(李光玉)이 진평왕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자, 왕도 이를 신기하게 여겨 아기에게 조(曺)라는 성(姓)을 내리고 계룡(繼龍)이라고 특사(特賜)하였다.계룡(繼龍)은 자라나면서 매우 총명하였으므로 왕이 사랑하여 여러 관직을 내리고 부마(駙馬:왕의 사위,부마도위의 약자)로 삼았는데 그가 곧 창녕조씨(昌寧曺氏)의 시조 조계룡(曺繼龍)이다. 태사공(太師公)조계룡(曺繼龍)은 나라에 공을 세워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창성은 창녕의 고호)에 봉해졌고 벼슬이 보국대장군 상주국 대도독 총지휘제군사 금자광록대부 태자태사(輔國大將軍 上柱國 大都督總指揮諸軍事 金紫光祿大夫 太子太師)에 이르렀다.<품계설명- 보국대장군(정2품의 무산계),상주국(上柱國:국가 최고의 훈호),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문관의 종2품 품계로 고려때는 1076년(문종 30)문산계 29계중 제3계로 정했음,1275년(충렬왕 1년) 명칭이 광정대부(匡靖大夫)로 바뀌었다가 1361년에는 정2품대부로 되었음),태자태사(太子太師:3공(태자.태부.태보)이 공히 (정1품)이나 태사(太師)를 서열으뜸으로 여김>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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