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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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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紹修書院)을 세운 주세붕과 부자(父子) 절신 배출우리말과 글을 다듬는데 일생을 바친 선구자 '주시경'최초의 국어사전 "말모이"의 편찬에 착수 주시경의 "말모이" 초고는한글학회가 "우리말 큰사전"을 완성하는 데 초석상주주씨(尙州周氏)는 당나라 중종때 주행검의 아들인 주이(周 )를 시조로 받든다.시조 주 이는 당나라 덕종때 병부시랑(兵部侍郞:고려때는 정4품 국방차관)을 지내고 786년(신라 원성왕 2년)에 당나라의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왔다가 귀화했다고 한다.주 이는 신라에서 병부령(兵部令:병부의 으뜸 벼슬로 고려때는 종1품 재상반열),상주총관(尙州 摠管:신라때 각 고을의 군대를 통솔하던 벼슬로 뒤에 도독(都督)으로 고침.군주 軍主) 등을 지냈고 이를 인연으로 후손들이 상주에 터를 잡고 주 이를 시조로 받들며 상주(尙州)를 본관으로 삼았다.주씨(周氏)의 원조는 고대 중국 주나라 무왕이라 한다. 주나라는 37대 난왕때 진나라에 망했는데 그 후 후손들이 나라이름인 주(周)를 성(姓)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상주주씨(尙州周氏)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도은공파(陶隱公派:파조,20세손 주유周瑜),목천파(木川派),박사공파(博士公派:파조,주유의 동생 주선 周璿),시랑공파(侍郞公派:주관(周琯)을 1세조로 함),창의공파(倡義公派:주관의 8세손 주선남(周善男)이 중시조),판서공파(判書公派:파조 19세손 주세후(周世候)등으로 분파되었다.경남 합천 율곡면 문림리는 이마을 대부분이 주씨(周氏)라고 한다. 처음 이 고을에 들어온 주씨 조상은 고려말의 절신 주유(周瑜)이다. 그는 고려가 망하자 이곳 대암산 기슭에 은거하며 고려의 재기를 빌며 후학들을 길러냈다고 한다. 수백년 이상된 고목이 숲을 이루는 마을뒤편에 지붕을 드리운 호연정(浩然亭)은 주유를 기리는 사당이다. 명종때 예안현감(縣監:종6품 수령)을 지낸 그의 후손 주이(周怡)가 세운것으로 그는 벼슬에서 물러난 후 이곳에서 후손들에게 호연지기(浩然之氣)의 기상을 가르쳤다고한다.상주주씨(尙州周氏)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문관을 뽑아쓰기 위하여 보던 3년마다 보던 과거로 대과)에 6명, 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였으며 3년마다 실시됨)에 3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시험)에 8명,역과(譯科:중국어.몽고어.일본어.여진어에 능통한 사람을 역관으로 뽑기위하여 보던 과거)에 1명 등 18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하였다.인구조사에서 상주주씨는 1985년에는 총 5,165가구에 21,715명이었으며2000년에는 5,745가구에 18,384명이었다.상주(尙州)는 경상북도에 위치해 있으며, 상산(商山)이라고도 했다. 삼한시대에 진한(辰韓)의 영토였으며 1018년(현종 9)에 상주목(牧)으로 개편되었다.1408년(태종8)에 경상감영이 상주로 옮겨왔다가 1596년(선조 29) 관찰사영(營)은 경상도의 중앙에 위치한 대구로 옮겨갔다.상주는 상락(上洛).상산(商山).타아(陀阿) 등의 별호가 있었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상주목이 상주군으로 개편되었으며,1914년 군.면 폐합으로 함창군이 편입되었고 1931년 상주면이 읍(邑)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상주군이 상주시에 통합되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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