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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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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지씨(智氏)는 봉산지씨(인구 6,098명).봉주지씨(봉산지씨와 같음, 616명).용강지씨(1명).제천지씨91명).파주지씨(1명)등 총 5개의 본관에 2000년에는 6,748명이었다.그러나 봉산지씨 이외는 세거지명이라고 한다.봉산지씨(鳳山智氏,봉주) 시조 지채문(智蔡文)은 고려때의 명장이다. 시조 지채문의 선계(先系)에 대해서는 고증할 문헌을 잃게 되어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지채문(智蔡文)은 1010년(고려 현종 원년) 거란군이 내침했을 때 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또 왕의 피난길을 호종(扈從:왕가를 뒤따르며 수행함)한 공으로 토지를 하사받고 무관으로서 우상시(右常侍:문하부 간관 벼슬)를 겸직했다.후에 상장군(上將軍정3품 중앙군 최고지휘관)에 오르고 좌복야(左僕射:상서도성의 정2품 부총리)에 이르러 덕종이 즉위하자 일등공신에 추록되었으므로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받들고 관향을 봉산(鳳山:봉주의 별호)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조선씨족통보>에는 지씨(智氏)의 본관을 13본까지 기록하고 있으나 현존하는 관향은 봉주(봉산) 단본으로 전한다. 인구조사에 의하면 봉산지씨는1985년에는 713가구에 2,894명이었으며,2000년에는 1,903가구 6,098명이었다.봉산(鳳山)은 황해도 은파군과 봉산군 지역 옛 지명으로,충렬왕때 봉양군(鳳陽郡)으로 고쳐 지사(知事)를 두었다.1413년(태종13)에 봉산군으로 고쳤고,1947년에 사리원면이 사리원시로 승격하면서 봉산군에서 분리되었다.1982년 10월에는 해서리가 사리원시에 포함되는 대신 은파군의 청룡리가 봉산군에 이관되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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