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위메뉴 바로가기

세계 孝 중심지 향한 첫 발, 인성교육과 뿌리의식 - 孝 !World

성씨유래검색

  • 성씨

    진(陳)

    문중

    진(陳)

  • 유래

    여양진씨로 합보(合譜)하여 나주(羅州).강릉(江陵).삼척파(三陟派)로 통일문헌과 여양진씨(驪陽陳氏) <갑인보>사적편에 따르면 우리나라 진씨(陳氏)는 원래 송나라때 복주 출신인 진수가 우윤(右尹:고려때는 삼사(三司)의 종3품)을 지내다 오랑캐의 난을 피하여 고려때 우리나라에 건너와 여양현(驪陽縣:충남 홍성군 장곡면) 덕양산 아래에 정착하여 살았다고 한다.그의 후손인 진총후가 고려 예종때 '이자겸의 난'을 평정한 공(功)으로 여양군(驪陽君)에 봉해져 그의 후손들이 진총후를 시조로 받들고 본관을 여양으로 하였다.여양(驪陽)은 충청남도 홍성남쪽에 위치하는 장곡면(長谷面) 일대의 옛지명으로, 757년(경덕왕16)에 신량(新良)으로 개칭하여 결성군(潔城郡:결성)의 관할로 두었다. 고려초에 여양현(驪陽縣)으로 바뀌었고, 1018년(현종 9) 운주(運州:홍성)로 폐합되었다.<여양진씨대동보>에 의하면 시조 진총후(陳寵厚)는 고려 예종(1106~1112)때 상장군(上將軍:정3품)겸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병력 7,000명을 거느리며 수도를 경비하는 경군의 핵심 주력부대의 종3품)으로 적신(賊臣)인 '이자겸의 난'을 토평하는데 공을 세워 여양군(驪陽君)에 봉해졌다.후손들은 여양(驪陽)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후에 나주(羅州).강릉(江陵).삼척(三陟).흥덕(興德).양주(楊州).덕창(德昌)진씨 등으로 분적되어 각각 본관을 달리 사용해왔다.그러나 모두가 진총후를 시조로 하는 같은 뿌리라 하여 오늘날에는 여양(驪陽)으로 합보(合譜)하여 나주(羅州).강릉(江陵).삼척파(三陟派)로 통일하고 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목록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자료관리 담당부서 : 효문화마을관리원 > 뿌리공원과 > 뿌리공원담당 연락처 : 042-581-444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