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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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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조에서 무훈(武勳)으로 명성,조선때는 문명(文名)을 떨쳐“현씨는 우둔한 사람이 없다.”는 현무둔재(玄無鈍才) 전통현씨(玄氏) 시조 현담윤(玄覃胤)은 평안도 연주(延州:영변) 출신으로,고려 의종때 대장군(大將軍:종3품 무관)을 지내고 명종 때 일어난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내사문하성의 정2품 부총리)에 올라 연산군(延山君:연산은 연주의 별호)에 봉해졌다.고려사(高麗史)는 공(公)의 충절과 공훈에 대하여 "나라의 거성(巨星)으로서 기리 빛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고,시조의 세 아들도 국가에 큰 공을 세워 장남 현덕수(玄德秀)는 성산부원군(星山府院君)으로, 차남 현이후(玄利厚)는 광성군(廣城君), 3남 현덕유(玄德裕)는 회원군(檜原君)으로 봉(封)해져, 그 자손들이 고려와 조선시대 및 근.현대를 거치면서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현씨는 우둔한 사람이 없다.”는 현무둔재(玄無鈍才)의 전통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후손들은 현담윤(玄覃胤)을 시조로 받들고, 시조의 봉군지명(封君地名)인 연주(延州)를 본관으로 삼아, 1천년에 가까운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시조 현담윤이 세상을 떠나 장례식때의 일이 지금도 전한다.장례식 날 상여가 오리정(五里亭)이라는 곳에 이르자, 마을사람들이 다 모여 나오기에 상여를 멈추고 영령앞에 간단히 술과 과일을 차려놓고 예를 올리게 되었다. 예식이 끝난후 상여를 다시 들려고 하였는데, 상여가 땅에 뿌리 내린듯 꼼짝도 하지않았다. 혹시,"이 곳에 묻히시고 싶은 뜻이 있으신가 "하고 누가 말하자, 그때에야 비로소 상여가 움직여, 결국 그곳에 묘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현씨(玄氏)의 본관은 문헌에는 연주를 비롯하여,성주현씨(星州).창원현씨(昌原).순천현씨(順天) 등 무려 106본으로 전해지나,현존(現存)하는 본관은 30여본이며,이들의 관향도 모두가 시랑공(侍郞公) 현담윤(玄覃胤)을 시조로 받드는 같은 뿌리의 자손들이 살았던 지명이라고 한다.그렇기 때문에 서기1747년(영조 23) 정묘보(丁卯譜)를 편수(編修)할 때 연주 현씨(延州玄氏)로 단일화 하였고 1982년에 간행된 임술보(壬戌譜)때도 문중(門中)의 합의에 따라 본관을 연주(延州)로 통일하였다.연주현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5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시험)에 7명 등 12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했다.인구조사에 의하면 연주현씨(延州玄氏)는1985년에는 11,969가구 48,156명이었고,2000년 인구분포도를 보면,서울시 11,419명,부산 3,210명,대구 4,116명,인천 2,228명,대전 1,481명,충남 천안시 일원에 2,879명,경기도 연천 등지에11,376명,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시흥리.온평리,제주시 노형동.아라동에 11,863명 등 총 59,096명이었다.연주(延州)는 평안북도 영변의 옛이름으로 영주(迎州)와 무주(撫州)의 합쳐진 지명이다. 995년(성종14) 방어사(防禦使:조선때 경기 이북의 각 도에 두어 병권을 장악하고 요지를 지키게 했던 종2품 무관)를 두었다가,1391년(공양왕3) 감무(監務:작은 현에 중앙에서 파견하는 감독관)를 두면서 태종때 무산현(撫山縣)이 되었다.세조때 연주(延州)를 나누어 운산군(雲山郡)에 속하게 하였으며,1895년(고종32)지방제도 개정으로 영변군으로 개칭되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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