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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유래검색

  • 성씨

    창(倉)

    문중

  • 유래

    우리나라 창(倉)씨는 1930년 조선총독부의 국세조사때 처음 등장한 성씨라고 한다.당시의 분포를 보면 서울과 경기도 양평에 11가구,충남 아산에 2가구,충북 청주에 1가구,강원도 원주에 1가구 등 15가구 모두가 남한에 살고 있었다.본관은 아산(牙山) 단본으로 전해오나,1985년 인구조사에서는 이밖에도 여산창씨,장성창씨 등이 나타난다.한편 창조리(倉助利)란 인물이 역사에 서적과 문헌에 나타나 있는데,그가 오늘날의 창(倉)씨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문헌에 따르면 그는 294년 남부대사자(南部大使者)로 국상(國相:국무총리)이 되었고 대주부(大主簿)에 올랐다.또 서기 296년 모용귀(慕容 )의 난을 평정하였고,서기300년에는 흉년이 들어 백성이 살기가 힘든데도 왕이 정치를 돌보지 않고 사치에 빠져있자 을불(乙弗)을 미천왕(美天王)으로 추대했다고 한다.또한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우리나라 창씨(倉氏)는 중국 태원(太原)에서 계출(系出)된 성씨이며,역사적으로는 주나라 양왕(襄王)때 양번인(陽樊人)으로 창갈(倉葛)이 나타난다고 한다. 1985년 인구조사에서는 총 258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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