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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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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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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한글번역 한문소설 <설공찬전> 작가, 3번의 장원급제 채수(蔡壽)두문동(杜門洞) 72현 채귀하"다 함께 두문동을 나와서 배를 잡아 앞다투어 나루를 건넜네,고려의 국록을 아직 잊지못하는데..인천채씨(仁川蔡氏)는 채선무(蔡先茂)를 시조로 받든다.시조 채선무는 고려중기에 동지사(同知事:동지경연사.동지중추부사.동지경연사 등의 각 칭,종2품)를 지내고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추밀원은 왕명의 출납과 궁중의 숙위,군기등을 맡아본 관청,추밀원사는 종2품)에 추증되었다.문헌에 의하면 시조 채선무의 후손으로 고려말에 호조전서(戶曹典書:정3품장관)를 지내다가 조선이 개국되자, 불사이군(不事二君:한사람이 두임금을 섬기지 아니함)으로 두문동(杜門洞:개성 광덕산 기슭에 있는 땅,고려가 망하고 유신(遺臣)들인 신규.신혼.이경 등 72인이 이성계에 반대하고 타 죽은 곳)으로 들어가 절개를 지킨,채귀하를 중시조(中始祖)로 받들며 세계(世系)하고 있다.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및 한국지리지 인천조(仁川條)에는 고려시대에 인천지방에 채씨.하씨.문씨.공씨(貢氏)등 호족(豪族:그 지역에서 세력이 드센 일족)이 세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인천이, 인천채씨의 세거지였음을 입증하고 있다.인구조사에 의하면 인천채씨는1985년에는 8,515가구 34,838명,2000년에는 11,415가구 37,391명이었다.인천은 1018년(현종9)에는 수주(樹州)에 속하였으며,인종때 인주(仁州),1390년(공양왕2)에 경원부(慶源府)로 승격되었다.1392년(태조1)인주로 환원하였고,1413년(태종13)에 인천군(仁川郡)이 되었으며 1460년(세조6)에는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다.1914년 군.면 폐합으로 인천의 관할구역이 제물포를 중심으로 한 인천항의 신시가지로 축소되었고,인천읍과 부평이 통합 부천군이 되었다.1981년 7월1일 직할시로 승격 경기도에서 분리 독립하였고 1995년 광역시로 개편되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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