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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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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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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 최영규(崔永奎:시호는 문혜)계는 신라 경순왕 김부(金傅)의 11세손으로원래 성은 김씨(金氏)수성(隋城)은 수원(水原)의 옛 이름이며 경기도 중남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통일신라 경덕왕때에는 수성군(水城郡)이라 불렀다. 1271년(원종12)에 수원도호부(水原都護府)로 고쳤으며 조선 세조때는 진(鎭)을 두었으며 1895년(고종 32)한 때 인천부(仁川府) 관할의 수원군으로 되었다가 1949년 수원군을 분할하여 수원시로 승격시키고 수원군을 화성군으로 개칭하였다.수성 최씨(隋城崔氏)는 영규계(永奎系)와 거경계(居涇系)의 두 계통이 있는데, 영규계의 시조 최영규(崔永奎:시호 문혜)는 경순왕 김부(金傅)의 11세손으로 본래는 성이 김씨(金氏)였다.시조 최영규는 1261년(원종2)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거쳐 남조전서(南曹典書:정3품장관)로 있으면서 보문각 대경(寶文閣大卿고려때 경연과 장서를 맡아보던 관아)을 겸하고 문학으로 서경(西京)의 학도들을 가르쳐 명망이 높았다.충렬왕때 수주(水州) 일대의 풍속이 퇴폐하고 이륜을 지키지 않아 사람의 행동이 금수(禽獸)와 다름없음을 왕이 개탄하자 그가 자청하여 호장(戶長:고을아전의 맨 윗자리)으로 부사(副使) 안 설(安 說)과 함께 나가서 효제(孝悌:효우라고 함,효도와 우애로 다스림)로 백성을 다스리고 의리(義理)로 설득하여 일년이 못되어 윤강(倫綱)이 부흥하자 왕이 가상히 여겨 1302년(충렬왕 28)에 수성백(隋城伯)에 봉(封)한후 최씨(崔氏)로 사성(賜姓)하여 수성최씨의 문호(門戶)를 열었다.한편 거경계(居涇系)는 고려때 서운관 부정(書雲觀副正:서운관은 천문 .역수.측후의 일을 맡아본 관청,정3품 제점(提點)이 으뜸 벼슬이고 부정(副正)은 종4품)을 지낸 거경(居涇)을 중시조로 받들며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최영규의 아들 최흡(崔洽)은 충렬왕때 문과에 급제하여 공조전서(工曹典書:정3품 장관),정당문학(政堂文學:중서문하성의 종2품 재신)을 거쳐 뒤에 찬성사(贊成事:문하부의 정2품 부총리)에 이르렀고 그의 아들 최원개(崔元凱)는 공민왕때 문과에 급제하여 봉상대부(奉常大夫:중산대부와 번갈아 바뀌면서 이어온 정4품 품계로 1362년 봉산대부로 개칭됨)로 평장사(平章事:중서문하성의 정2품 부총리)에 이르러 치사(致仕: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하고 향리(鄕里)에서 후진 양성과 저서로 일생을 보냈으며 그의 후대에서 안양공파(安襄公派),가산공파(嘉山公派) 등 5파로 분파되었다.최원개(崔元凱)의 손자 최경(崔涇)은 조선이 개국되자 출사(出仕)하여 사정(司正:오위의 군직으로 현직에 있지 않은 정7품)에 올랐으며 죽은후에 순충보조공신(純忠補祚功臣)에 책록되었고 자헌대부(資憲大夫정2품 품계)로 병조판서(兵曹判書:정2품 국방장관)에 추증되었다.최경(崔涇)의 아들 최유림(崔有臨)은 1450년(세종32)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고성 현령(固城縣令:종5품 수령)을 거쳐 의금부진무(義禁府 鎭撫:왕명을 받들어 죄인을 추국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인 의금부의 벼슬로 제조는 1명으로 으뜸 벼슬이고 제조 다음 벼슬인 진무는 2인을 둠)를 지냈고 1467년(세조13)에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적개3등공신(敵愾三等功臣)에 책록되어 수성군(隋城君)에 봉해진뒤 경상우도 병마절도사(慶尙右都兵馬節度使:종2품으로 병마를 지휘하던 절도사.병사)가 되었다.최유림(崔有臨)의 아들 최윤신(崔潤身)은 사마(司馬:사마시의 준말)로 있을 때 공로가 있어 천거로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백관을 규찰하던 종3품)에 이르러 치사(致仕:벼슬을 사양함)한후 고향에서 후진을 양성에 진력했다.최윤신의 손자 최희효(崔希孝)는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지방 판관(判官:관찰사.목사 등의 지휘받아 지방행정.사법사무 관장한 종5품)을 거쳐 예빈시 부정(禮賓寺副正:예빈시는 빈객의 연향과 재신의 음식공궤를 관장한 관청이며 부정은 종3품)등을 지냈고 1555년(명종 10)에는 동지사 서장관(冬至使書狀官:동짓날을 전후하여 중국에 가던 사신을 동지사라 하며 사신을 수행하여 기록하는 일을 맡은 임시벼슬로 '서장'이라고 함)으로 중국에 다녀왔다.봉암공(鳳巖公) 최원개(崔元凱)의 증손 최유용(崔有容)은 무과에 급제하고 통훈대부(通訓大夫:정3품 당하관)로 가산군수(嘉山郡守:종4품)를 역임한 후 통정대부(通政大夫:정3품 당상관)로 병조참의(兵曹參議:정3품)에 추증되었으며 조선때 감역(監役:감역관의 준말로 조선조에 선공감(繕工監)에 딸리어 건축에 관한일을 하던 종9품)을 지낸 최 윤종(崔潤宗)의 아들 최언호(崔彦浩)는 안동부사(安東府使:정3품)를 역임하였고 최정현(崔廷顯)은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선전관(宣傳官:선전관청의 관원으로 시위따위의 전명.형명(刑名)에 관한일을 맡아본 9품에서 3품) 겸 세자익찬(世子翊贊)을 거쳐 전라좌도 수군절제사(全羅左都水軍節制事:절도사 밑에 딸렸던 정3품으로 수군을 절도사와 같이 통솔함)가 되어 당대에 뛰어났다.수성최씨는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에 3명 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였으며 초시.복시.전시의 3단계였음)에 1명 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시험)에 18명,음양과(陰陽科:천문.지리.명과학(命課學)에 밝은 사람을 뽑기 위한 과거)에 7명 등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하였다.인구조사에 의하면 수성최씨는 1985년에는 총 10,619가구에 44,004명이었고2000년에는 총 15,964가구에 51,780명이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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