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하위메뉴 바로가기

세계 孝 중심지 향한 첫 발, 인성교육과 뿌리의식 - 孝 !World

성씨유래검색

  • 성씨

    태(太)

    문중

    태(太)

  • 유래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고구려의 후예 대중상 그리고 대조영의 가문시조 태중상(太仲象,대중상)은 천문 지리와 병법에 능통하였으며 696년(신라 효소왕 5)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요수를 건너 태백산 동쪽에 진국(후에 발해)을 건국하였다.그후 10세손인 대광현이 발해가 망한뒤 서기 934년(고려 태조14) 고려로 망명하자 태조가 그를 예우하고 태씨성(太氏姓)을 하사 하였다. 그후 10세손 태집성이 고려 고종때 대장군(大將軍:종3품)으로 서북면병마사(종2품 무관)가 되어 몽고군의 침입을 격퇴한 공으로 협계군(俠溪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협계(俠溪)로 하였다협계(俠溪)는 황해도 신계군(新溪郡)에 있었던 고려시대의 지명으로 고구려때는 수곡성이라 하다가 통일신라때인 758년(경덕왕17)에 단계현(檀溪縣)으로 고쳤다.940년(고려 태조23)에 협계로 고쳐져 1396년(태조5) 신은현(新恩縣)에 통합하기까지 그 지명이 지속되었다.감무(監務:작은 현에 중앙에서 파견한 감독관)를 두었던 신은현(新恩縣)과 협계현(俠溪縣)의 지명을 한자씩 따서 신계군(新溪郡)이 되었다.협계태씨(俠溪太氏)는 속말갈 출신인 태중상(太仲象)을 시조로 받든다.그의 아들이 발해국왕 대조영(大祚榮)이다.대조영은 만주벌판을 지배한 발해의 건국자로 2천리 대장정에 230년 왕조의 대제국을 건설했다.그 당시 발해 땅은 50만 평방 키로에서 63만 평방 키로 쯤 되어고구려보다 1,5배 내지 2배 정도 넓었고 신라보다 5배나 넓었다.그리고 한반도 전체보다 2,8배 정도 되어 가히 대제국이라 할 수 있다.우리나라 태씨(太氏)의 시조는 속말갈(송화강유역의 속말수에서 유래되었고 말갈족은 만주에 살던 종족이다 이들의 명칭은 6세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발해가 멸망한 10세기 초반까지 이어진다.말갈족은 발해 멸망후 거란치하로 들어가면서 여진족이라 불렸고 여진족이 세운 나라가 금나라이며 나중에 만주족으로 변신하면서 청나라를 세우게 됨)출신인 대조영의 아버지 태중상(太仲象)이다.협계태씨족보(俠溪太氏族譜)에 의하면 태중상(太仲象)은 천문(天文),지리(地理),병법(兵法)에 능통했으며,696년(당나라 중종 사성13,신라 효소왕 5) 고구려의 유민(遺民)을 이끌고요수(遼水)를 건너 태백산(太白山) 동북지방으로 본거지를 옮겨 말갈(靺鞨)과 통합하여 진국(震國)을 세웠다.태중상(太仲象)의 18세손 태집성(太集成)이 고려 고종때 어사대부(御史大夫:고려때 시정에 대한 논술,풍속의 교정,관리들에 대한 규찰을 맡아보던 관아의 벼슬)와 대장군(大將軍:종3품)에 올랐다.태집성은 1231년(고종18) 몽고군이 내침하자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병마를 지휘하던 종2품 병사.절도사)가 되어 이를 격파하는데 크게 공을 세워 협계군(俠溪君)에 봉해져 사공(司空:고려시대 3공의 하나로 정1품)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태집성(太集成)을 1세조로 받들고 본관을 협계(俠溪)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목록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자료관리 담당부서 : 효문화마을관리원 > 뿌리공원과 > 뿌리공원담당 연락처 : 042-288-8312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