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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주판씨(海州判氏) 선조는 고려 말엽에 충신으로서 왕을 보필하는 관직에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간신배의 모함을 받아 반역의 누명을 쓰고 강화도 근처의 섬으로 유배 도중에 풍파를 만나 배가 파선이 되어 표류하다 구사일생으로 한강 하류에 있는 밤섬에 도착,그 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당시 기록과 서울 월계동에 살고 있는 판영호(判榮鎬)씨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마포구 율도동(栗島洞,밤섬)에 살고 있었던 종손 판봉석(判鳳石)이 대대로 전해오던 보첩(譜牒)을 보관하다가 1925년의 대홍수로 밤섬 전역이 침수되었을 때 유실되었다고 한다.그 후 1967년 밤섬에 살고 있었던 후손들은 정부시책에 따라 마포구 와우산 중턱에 옮겨 살다가 점차 전국 각처로 이사갔다고 한다.근대에 와서 처음 밤섬에 정착했던 선조의 이름을 판해율(判海栗)로 존모(尊慕)하고,전국에 흩어진 후손들이 단결하여 족보 편찬을 서두르고 있다.인구조사에 의하면 해주판씨는1930년 조선총독부의 국세조사때 서울과 고양군을 비롯한 북한 지역에 20여가구가 살고 있었고,2000년에는 87가구 290명이었다. 해주(海州)는 황해도 남해안에 위치한 도청소재지로 936년(태조19)에 태조 왕건이 남쪽이 바다와 접하고 있다고 하여 해주를 사명(賜名)했으며, 성종때는 별호로 대령(大寧).서해(西海)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1896년 도제(道制)실시로 황해도 도청소재지가 되었다.1945년 해주시로 개편되었으며,1954년 북한 관제정비로 황해남도에 편입되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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