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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包)

    문중

  • 유래

    우리나라 포씨(包氏)는 풍덕포씨(52명).수원포씨(8명).순천포씨(67명)등 3본관에 인구는 1985년에는 238명이었으며,2000년 조사때는 129명이었다.포씨(包氏)는 문헌에 따르면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로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주(周)나라 신백(申伯)의 후손으로 신포서(申包胥)가 있었는데 그의 후손들이 이름을 성(姓)으로 삼았다고 한다.1930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국세조사때 평남 순천,맹산,성천,개천군 등지에 15가구,평북 삭주군에 1가구,황해도 곡산군에 2가구,함남 신흥군에 2가구 등 20가구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후손들로는 한나라때 곡아인(曲阿人)으로 간의대부(諫議大夫:고려때는 문하부(門下府)의 관직으로 사의대부(司議大夫)라고도 했으며,고려 목종 때부터 좌우간의대부가 있었다.문종때 정4품관을 좌우 각 1명씩 보직하였음)를 지낸 포함(包咸:자는 자량 自良)과 남북조시대 송나라에서 전첨(典籤:우리나라 조선때도 종친부(宗親府)의 관직이었으며 품계는 정4품이고,정원은 1명이었다.1430년(세종12) 11월 종친부를 설치할 때 전첨사(典籤司)를 두어 부중의 잡무,즉 종친의 지변을 맡게함)을 역임한 포법영(包法榮),당나라 덕종때 염철사( 鐵使:당.송나라 때에 소금 전매 등을 관장한 관직이며 안사(安史)의 난 이후 국가 재정을 보충하기 위하여 758년 소금 전매를 실시하면서부터 두었음)를 지낸 포길(包佶:자는 유 幼)등이 있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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