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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馮)

    문중

    풍(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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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의 광복을 위해 몸바친 선조의 후손 조선조에서 희성임에도 관직 진출 많아풍씨의 관향인 임구는 중국의 산동성(山東省) 청주부(靑州府) 임구현(臨 縣) 지역이다.임구풍씨의 시조 풍삼사(馮三仕)는 중국 산동성 임구현 사람으로 선대는 주나라 문공의 열다섯째 아들 필교가 진나라에서 벼슬을 하고 위나라 후(侯)가 되어 풍성을 식읍(食邑:나라에서 공신 등에게 내리어 그곳의 조세를 개인이 받아 쓰게 하던 고을)으로 받고 성(姓)을 풍(馮)으로 했다고 한다.시조 풍삼사(馮三仕)는 명나라의 태학(太學:조선때는 성균관을 달리부르던 말,고려때는 국자감의 한 분과,고구려때의 국립교육기관)으로, 1645년(조선 인조23년) 봉림대군(후에 효종)과 같이 심양에서 명나라 광복을 도모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9의사(아홉명의 의사)와 같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착하여 살면서 고향인 임구를 본관으로 하였다.시조 풍삼사의 증손 풍경문이 조선조 영조때 훈련원 주부(主簿:종6품 낭관)를 거쳐 어모장군(禦侮將軍:정3품 당하관)을 지내고 통정대부(通政大夫:정3품 당상관의 품계)에 추증(追贈:나라에 공이있는 벼슬아치에게 사후에 관직을 높여주는것)되었다.그의 아들 풍재검은 용양위 부사과(副司果:용양위는 조선전기 중앙군인 오위(五衛)의 하나로 부사과는 종6품)를 지내고,선략장군(宣略將軍:조선때 종4품 무산계의 하(下) 품계)을 역임한 후 가선대부(嘉善大夫:종2품 품계)로 호조참판(參判:종2품 차관)에 추증되어 가문을 중흥시켰다.인구조사에 의하면 임구풍씨는1985년에는 총 91가구에 361명이었으며2000년에는 175가구 585명이었다.시조(始祖)의 묘는 양주시 구리의 양노리에 있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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