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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한씨(韓氏)는청주한씨(642,992명).가주한씨(2,722명).강릉한씨(8,839명).강화한씨(1,318명).개성한씨(2명).경주한씨(4,053명).곡산한씨(4,917명).광주한씨(551명,경기도광주).교하한씨(7명).금괴한씨(308명).금산한씨(589명).김해한씨(805명).나주한씨(2,572명).남양한씨(1,742명).단주한씨(138명).당진한씨(350명).동래한씨(516명).면천한씨(93명).밀양한씨(693명).부안한씨(414명).성주한씨(2,379명).수원한씨(607명).신천한씨(122명).안동한씨(690명).안변한씨(90명).양주한씨(153명).여주한씨(514명).연안한씨(312명).원주한씨(359명).전주한씨(1,920명).정주한씨(1,715명).제주한씨(460명).진주한씨(1,397명).창원한씨(1,252명).청풍한씨(1,073명).충주한씨(11,694명).파주한씨(698명).평산한씨(545명).한산한씨(862명).한양한씨(2,489명).해주한씨(753명).홍산한씨(10명) 등 42본관이 있으며 지난 2000년 인구조사때는 총 704,365명이었다.한씨(韓氏)는 현달하는 후손의 배출로 전국에 걸쳐 살고있는 지명이나 작호(爵號)를 본관으로 하여 평산한씨.한양한씨.양주한씨 등으로 분적하였으나 수보(修譜)할때마다 한 조상의 혈손이라는 신념으로 <한씨중앙종친회>에서 지속적으로 환적(還籍)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한씨(韓氏)는 우리나라에서 최고(最古)의 역사를 지닌 삼한갑족(三韓甲族:대대로 문벌이 높고 훌륭한 씨족)이다. 삼한갑족(三韓甲族)의 삼한(三韓)은 고대 즉 마한.진한.변한, 신라.고려.조선조를 말한다.갑족(甲族)이란 문벌(門閥)이 좋은 집안으로 고관대작에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어 백성과 나라에 공헌한 현신(賢臣)을 배출 한 씨족,문.무과(文武科)에 등제한 사람이 많은 씨족,충.효.열사가 많이 배출된 씨족을 뜻한다.한씨(韓氏)는 청주(淸州)단본으로 내세우고 있는데,문헌에는 청주 외에 한양한씨.평산한씨.안변.양주.곡산한씨.홍산(鴻山).대흥(大興).부안(扶安).개성(開城).함흥(咸興).금산(錦山).단주한씨 등 10여 본이 기록되어 있으며 모두 청주에서 분적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언제 어떻게 분적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고 지난 2000년의 조사에서 나타난 42본 중 대부분은 세거지명으로 알려졌다.우리나라 한씨(韓氏)는 고조선시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청주한씨세보와 문헌에 따르면 기자조선(箕子朝鮮:기자는 고대 은나라의 왕족,은나라가 망하여 부하를 데리고 조선으로 왔음)의 마지막 왕인 준왕(準王)의 31세손 지원(知原)에게 우성(友誠).우평(友平).우양(友諒)의 3형제가 있어 각각 기씨(奇氏).선우씨(鮮于氏).한씨(韓氏)가 되었다고 하며,청주한씨의 시조 한란(韓蘭)은 기자의 후예인 우양의 원손(遠孫)이 된다. 그러나 그동안 기씨조선(箕氏朝鮮)으로 알려졌던 고조선 사회는 사실상 '한씨조선(韓氏朝鮮)'이고, 준왕은 기준(箕準)이 아니라 '한준(韓準)'이 맞으며,결국 한씨(韓氏)는 기자의 후예가 아니라 한국의 고유한 씨족(氏族)이라는 것이 사학계의 통설로 되어 있다.다시 말하면 고조선의 한씨(韓氏)는 부여의 해씨(解氏),고구려의 고씨(高氏),백제의 부여씨(扶餘氏),신라의 박씨(朴氏).김씨(金氏),발해의 대씨(大氏),고려의 왕씨(王氏),조선의 이씨(李氏)와 마찬가지로 한국 고유의 대성(大姓)이었다.한편 전북 익산의 쌍릉(雙陵)인 청주한씨 시조묘는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준왕이 남(南)으로 내려와 한씨(韓氏)를 칭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魏略),청주한씨 시조묘로 보고 문중에서 배향의식을 행하기도 한다.그러나 최근 쌍릉에 대한 발굴을 통해 무덤이 백제말기에 축조된 "횡혈식 석실분"으로 판명되면서 그동안의 청주한씨 시조묘라는 인식이 중대한 국면을 맞았다.그러나 금마 지역에 고조선"광무왕"의 설화가 지속적으로 전해왔다는 것과 청동기 유적지가 존재하는 것을 볼때 한씨 시조묘 설(說)도 쉽게 물리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역사학자 이 청)고조선시대의 왕실이었던 한씨(韓氏)는 이후 고려 후기에 이르러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는데 조선시대에 문과(文科:대과)급제자 273명,상신(相臣:정1품 우의정.좌의정.영의정)12명,공신(功臣)24명,대제학(大提學:홍문관.예문관의 정2품 문형)1명을 배출하였다.윤씨(尹氏)와 민씨(閔氏),한씨(韓氏)는 조선시대에 왕비(王妃)를 최다 배출한 집안으로 한씨(韓氏)는 6명을 배출하였다.청주를 중심으로 한 충청북도 일대는 한씨의 동족부락이 많아 신씨(申氏)와 함께 이 고장의 대성(大姓)으로 꼽히고 있다.청주한씨의 분포지역을 보면 충간공파(忠簡公派)는 충남지역과 경기,문정공파(文靖公派)는 강원.경남,몽계공파(夢溪公派)는 경상도 상주.합천,관북파(關北派)는 평북 안변 및 함경도 함흥.영흥,충성공파(忠成公派)는 충남.부산,양절공파(襄節公派)는 전국 각처에 각각 분포되어 있다.그밖에도 제주에 많이 살고 있는데 이 일문(一門)은 고려 말기 예문관 대제학(藝文館 大提學:예문관은 제찬과 사명(辭命)을 맡아보던 관청이며 대제학은 2품)으로서 태조 이성계를 섬기지 않아 유배된 한 천(韓 )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청주한씨의 세계(世系)는 시조 한란(韓蘭)의 후대에서 30여파(派)로 나뉘는데 그 중 양절공파,문정공파,충간공파,몽계공파,관북파,충성공파 등 6파(六派)가 청주한씨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충성공파>의 한명회(韓明澮)는 시조 한란의 12대손 한기(韓起)의 아들이다.그의 조부 한상질(韓尙質)은 고려 말기에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각 지방의 병마를 지휘하던 종2품 병사.절도사)를 역임하고 조선개국 초기에 주문사(奏聞使:주청사,중국에 주청할일이있을때 보내던 사신)로 명나라에 들어가 '조선'이라는 국호를 정해 받고 돌아온 사람이다.증조부 한수(韓脩)는 공민왕때 대언(代言왕명의 하달을 맡아보던 벼슬)이 되어 신돈(辛旽)이 집권하자 이를 반대하였으며,당대의 명필로서 특히 예서와 초서에 뛰어났다. 증조부 한상경(韓尙敬)은 조선개국공신으로 공조판서(工曹判書:정2품 대사공(大司空)이라 함)를 거쳐 우의정(右議政:정1품 정승)을 지내고,영의정(領議政:정1품 정승)에 올라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서원은 청주의 옛 지명)에 봉해졌다.이렇듯 빼어난 가문을 배경으로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심복으로 단종1년 계유정난(癸酉靖難:1453년(단종 원년)에 수양대군이 김종서,황보인 등 여러 고명(顧命:임금이 신하에게 유언으로 뒷일을 부탁함)대신을 없애고 정권을 잡은 사건)에서 정난1등 공신에 올라 도승지(都承旨:승정원의 정3품 왕의 비서실장),이조판서(吏曹判書:정2품 장관)를 거쳐 영의정(領議政:정1품 정승)에 이르렀다.세조의 뒤를 이어 어린 예종이 즉위하자 세조비 윤씨(尹氏)가 역사상 첫 대비청정(大妃聽政)인 수렴청정을 하게 되자 신숙주 등과 일익을 담당하여 4차례의 공신이 되었다.특히 한명회 일가의 혼인 관계는 당대 지배층 성격의 일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그에게는 아들 하나 딸 넷이 있었는데 큰 딸은 세종의 부마(駙馬:부마도위의 약자로 왕의 사위) 윤사로(尹師路)의 며느리가 되고,둘째 딸은 영의정(領議政:정1품정승) 신숙주의 큰아들에게 출가하였으며,셋째딸과 넷째딸은 각각 예종비와 성종비가 되었고 손자는 성종의 부마(駙馬:부마도위(駙馬都尉)의 약자로 임금의 사위.국서)가 되었다.이렇듯 한명회 일가는 왕실과 이중삼중의 인척관계를 맺음으로써 족세(族勢)를 더욱 강화시킨 본보기이다.<양절공파>의 한확(韓確:양절공)은 세종때 병조판서(兵曹判書정2품 국방장관)와 이조판서(吏曹判書:정2품)를 거쳐,단종때 우의정(右議政:정1품 정승)에 이르렀으며 세조때는 좌의정(左議政:정1품 정승)을 지냈다.정승(政丞:정1품) 한확(韓確)의 딸은 덕종(성종의 아버지)비(妃)가 되었으며 한 확의 누이 둘은 각각 명나라의 태종비(太宗 妃)와 선종비(宣宗妃)가 되었다.그의 세 아들 한치인(韓致仁).한치의(韓致義).한치례(韓致禮) 등도 모두 현달(顯達:벼슬이나 덕망이 높아서 이름을 세상에 들날림.입신출세)하여 부자(父子)가 가문을 크게 중흥시켰다.선조때 명상(名相) 한응인(韓應寅)은 양절공 한확의 6대손이다.조선 영조때 영의정(領議政:정1품 정승)에 올라 명성을 떨친 한익모(韓翼謨)와 그의 형으로 대사헌(大司憲:백관을 규찰하고 풍속을 바로 잡던 사헌부의 종2품 검찰총장)을 지낸 한현모(韓顯謨)는 한 응인의 6대손이며 이조판서(吏曹判書:정2품장관)를 지낸 한광회(韓光會)는 한응인의 7대손이다.순조때 영의정(領議政:정1품 정승)에 오른 한용구(韓用龜)는 한현모의 손자이며 예조판서(禮曹判書정2품)에 오른 한정교(韓正敎)는 한용구의 손자다.고종때 이조판서와 대제학(大提學:경서와 사적의 관리와 문한의 처리 및 왕의 자문에 응하던 홍문관과 예문관의 정2품 문형)을 지내고,당대의 명문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한장석(韓章錫)은 영의정 한용구의 증손이다.양절공파의 방계(傍系:직계에서 갈라져 나온 혈통)로 한확의 조카가 되는 한치형(韓致亨)은 연산군때 때 우의정(右議政:정1품 정승)을 거쳐 영의정(領議政:정1품 정승)에 올랐으나 연산군의 폭정에 대해 충간(忠諫)하다 화를 입었다.<문정공파>의 문정공 한계희(韓繼禧)는 관찰사(觀察使:종2품 감사)를 지낸 한혜(韓惠)의 아들이다. 그는 세종 때 문과(文科:대과)에 급제하고 세조때는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왕세자의 시강과 규간하는 일을 맡았던 관청)에서 세자(世子)를 가르쳤으며 성종때는 좌찬성(左贊成:의정부의 종1품)에 이르렀다.한계희는 훈구파(勳舊派)의 유학자로서 경국대전(經國大典),의방유취(醫方類聚)등을 편찬하였다.형 한계미(韓繼美)와 아우 한계순(韓繼純) 모두 이조판서(吏曹判書:정2품 장관)를 지냈으며,광해군 때 좌의정(左議政:정1품 정승)을 지낸 한효순(韓孝純)은 한계희의 현손(玄孫:고손자)이다.당대의 뛰어난 학자로 '동국지리지'를 저술하여 실학에 선구적 업적을 남긴 한백겸(韓百謙)은 한효윤(韓孝胤)의 아들이며 석학(碩學) 한원진(韓元震)은 한계희의 9대손이다.석학(碩學) 한원진(韓元震)은 우암 송시열의 제자인 권상하의 제자다.그는 당시 심성론(心性論) 논쟁에서 낙론(洛論)인 이 간(李柬,외암)의 주장을 반대하고 인간의 성(性)이 같지 않음을 주장하여 호론(湖論)의 영수가 되었다. 호론은 기호학파의 한 갈래로 권상하의 제자인 한원진이 심성에 관하여 '사람과 짐승은 본성이 다르다'며 같은 제자인 이간과 견해를 달리했는데 충청도 사람이 이 견해를 좇아 '호론'이라 했다.그는 사계 김장생(金長生),우암 송시열(宋時烈),권상하(權尙夏)로 이어지는 율곡 이이(李珥)의 학통을 계승하고 송시열이 저술에 착수했던 주서동이고(朱書同異考)를 50년만에 완성하였는데 그 책은 한국 유학사상 괄목할만한 업적으로 평가된다.<충간공파>는 고려 말기에 이부상서(吏部尙書:정3품 장관)를 지낸 충간공 한 리(韓理)를 1세조로 받든다. 충간공의 아들 한승순(韓承舜)의 세 아들, 한서룡(韓瑞龍).한서봉(韓瑞鳳).한서구(韓瑞龜)의 후손에서 크게 번창하였다.특히 한서룡의 아들 5형제 한장손(韓長孫).한중손(韓仲孫).한종손(韓終孫).한천손(韓千孫).한만손(韓萬孫)등이 빼어났다.한서구는 수양대군의 심복으로 계유정난에 공을 세워 정난공신에 오르고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왕명을 출납하고 군기를 맡은 중추원의 정3품)에 이르렀다.<몽계공파>는 세칭 보안한씨(保安韓氏)로 알려진 파(派)이다. 고려 말에 전법판서(典法判書:정3품장관)를 지낸 몽계공 한철충(韓哲沖)을 1세조로 받든다.몽계공은 고려가 망하자 산 속에 은거하면서 불사이군(不事二君:한사람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함)의 충절을 지켰다.그의 아버지 한희적(韓希迪)은 예의판서(禮儀判書고려때 정3품장관)와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보문각은 경연과 장서를 맡아보던 관아이며 대제학은 종2품 문형)을 지내 유명하였으며 조부 한 연(韓璉)은 보문각 직제학(直提學:고려때는 정4품)을 지냈다.그의 아들 한진(韓珍).한염(韓廉).한겸(韓兼).한문(韓文)은 각각 목사(牧使:관찰사 아래서 지방의 각 목(牧)을 다스리던 정3품 문관)와 예조판서(判書:정2품).현감(縣監:종6품수령)등을 지냈다.<관북파>는 세칭 '안변한씨'라고 한다.관북파 후손들은 함남 북청과 안변,함흥 일대에 많이 살고 있다. 1세조인 한련(韓漣)은 예빈윤(禮賓尹:빈객의연향을 맡아보던 관청의 벼슬)을 지내고 아들 한유(韓裕)는 찬성사(贊成事:고려 문하부의 정2품부총리)를 지냈으며,고려말에 밀직부사(密直副事:왕명의 출납과 궁중의 숙위를 담당하던 밀직사의 정3품)를 지낸 한경(韓卿)이 그의 손자다.한경의 딸이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부인으로 신의왕후(神懿王后)에 추봉되었다. 한 경은 태조가 즉위하자 문하부 영사(門下府 領事:조선초에 정사를 총괄하던 관청의 벼슬)를 지내고 안천부원군(安川府院君)에 봉해졌다. <김진우(한국성씨연구소장)의 "한국인의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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