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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중구

조선시대인물

인물정보

기본정보
이름
권감(權堪)
생존연대
조선시대 1555(명종10)~~1643(인조12)
출생/거주지
문화동(옥미)부조묘
[상세설명]

조선후기 학자. 휘는 감이고, 자는 치능입니다. 1760년(영조36)3월 20일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영민하였고, 성장해서는 단량하였습니다. 이미 바른 환경 속에서 영향을 받고, 스스로 더욱 수양하여 더욱더 깊은 경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비록 어렸을 때 치졸한 애들과 같이 있어도 비리한 언어는 하지 않았고 무례한 모습은 없었으며 항상 스스로 겸손하였고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간혹 비의가 있으면 반드시 이를 배척하였고 조금도 가차함이 없이 엄격하였습니다.

공에게는 『유집』사권이 있습니다. 유집에서 누락됨을 우울하게 생각했던 공은, 모두 손수 손으로 써서 집안에 보관하여 두었습니다. 그는 시흥의 감정도 풍부해서 천여편 시도 연습하였고, 산수명경에 소요할 때는 스스로 즐기기도 하였습니다.

공은 나이가 들면서 예학에서도 힘써 공부하였는데 사대부례인 사례 즉 관혼상제등에 대해서는 모두고거를 통하여 깊이 연구하였습니다. 당시 가례인 사례는 동족간에 결속을 강화하고 종족내에 질서와 안정을 이루는데 절대적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당시 사대부들은 예에 대한 천착을 통해 예에 대한 원칙과 일관성을 견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예는 종족내의 종법질서는 재산의 분배나 상속, 제례의 전수에 기준이 되었고 또한 한 가정과 종중 전체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는 절대적인 준거가 되었기 때문에 예가 절실히 요청되었던 것입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공도, 단순히 성현이 제작한 예구절문에 구애되질 않고, 제작된 본의가 무엇인가를 연구하여 독자적인 예론을 갖고 있었습니다. 공의 예에 대한 연구는 단순히 예를 위한 예의 연구가 아니었고 스스로 몸소 실천궁행하면서 후진들도 아울러 수행할 것을 바라는 뜻에서 천착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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